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시편 90장 14절. 그런즉 우리에게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우리가 지혜에 이르도록 우리의 마음을 쓰게 하소서.


성경에서는 지혜의 시작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잠언 9장 10절.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


즉 하나님을 두려워 할때,

옆에서 누가 자신을 지켜보던지 아닌지 상관없이 늘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돌아보고 악을 멀리하게 되며, 그렇게 살아갈때에 비로소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지혜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똑똑하게 뭔가를 해결해 나가거나, 기가막힌 아이디어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지혜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죄를 짓고 끝까지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거부하면서 결국 지옥으로 간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시편 90장 14절은 이런 지혜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배울것이 또 하나 있다고 가르친다. 

날수 세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 중에, 살면서 앞으로 자신이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 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가면 주위에서 하나 둘씩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마련이다. 부모, 친척, 때로는 친구가 될수도 있다. 이런 경험들을 몇 번 하게되면 비로소 자신이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경험들을 통해 날수 세는 것을 한 두 번 해본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남은 시간도 얼마 없고 또 그때가서 자신의 인생을 돌이키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이렇게 느즈막에라도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면 그나마 참 다행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젊을때부터 날수 세는 것을 배워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정말 값지고 뜻깊게 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일찍부터 날수 세는 것을 배워야 할 이유이다.


2022년 8월 17일 수요일

대언하다. to prophesy

 

사무엘상 18장 10절에는 일반 크리스찬들이 잘 몰랐던 내용이 나온다.

사무엘상 18장 10절. 개역 한글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여기서 야료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을 보면 내가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흠정역 성경으로 다시 한번 같은 구절을 살펴보자.

사무엘상 18장 10절. 흠정역

10. ¶ 그 다음 날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하매 그가 집의 한가운데서 대언을 하더라. 다윗이 다른 때와 같이 손으로 하프를 켜더라. 사울의 손에 창이 있었으므로

그렇다. 대언을 한 것이다.

영어로는 prophesy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누구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Prophet, 즉 대언자라고 한다. (개역 성경에는 예언자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대언자를 예언자로 표기하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이 구절을 잘 보면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했을때 사울이 무려 "대언하고" 있다.

보통 교회에 가면 성령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악한 영도 임할수 있고, 악한 영이 임한 사람들은 악한 영의 말을 대신 전할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특히 교회에는 거듭난 사람 뿐만아니라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도 가득하다.

이들이 악한 영의 말을 대신 전하는 말을 단지 교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받아 들였다가는 큰일난다.

도대체 방언도 번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게 성령의 말인지, 악한 영의 말인지 알수가 없다.

방언을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있나?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내용이 악한 영이 전하고픈 메세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것인가?

방언을 하면 다 거듭난 사람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이 무엇을 고백하는지 들어보기 전에는 알수없다.

방언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불교에서도 방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무슬림도 방언을 한다.

힌두교도 방언을 한다.

그러니 이해할수 없는 방언을 단지 교회에서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메세지를 하나님의 메세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지극히 혼란한 시대이다.


2022년 7월 4일 월요일

두 번째 유월절

 

성경을 여러 번 읽었었는데, 어째 읽을때 마다 매번 새롭다.

보통 알고 있기를,

일 년에 한 번 있는 유월절 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민수기 9장 11절을 보면 두 번의 유월절을 지내는 경우가 나온다.

민수기 9장 11절.

둘째 달 십사일 저녁에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유월절 어린양을 누룩 없는 빵과 쓴 채소와 함께 먹을 것이요,


한 해의 첫 번째 달 14일에 지내는 첫 번째 유월절을 지낼때,

그때 때마침 여행중이거나, 시체 같은 부정한 것을 만져서 부정해지는 바람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첫 번째 달 14일에 지키는 유월절에 참여할수 없었으므로 그 다음달 즉, 두 번째 달 14일에 지키는 두 번째 유월절에 참여했다.

그러니까 유월절은 1년에 한 번 있는것이 아니라 2번 있는 것이다.

물론 민수기의 기록시기인 그때만 예외적으로 2번의 유월절을 지켰다고도 볼수 있겠지만..

사람 사는데에는 늘 변수가 넘치는데,

그 다음 해 부터 모든 유대인들이 마침 유월절 시기에 단 한 사람도 부정하게 되지 않았다거나, 단 한 사람도 여행중이었던 사람이 없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당연히 그 다음 해에도 이런 어쩔수 없는 경우에 있었던 사람들을 위해 두 번의 유월절이 지켜졌을 것이고,

이것은 아마도 전통처럼 지켜졌을 것이다.

아마 예전에도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인식했을텐데..

왜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실처럼 느껴지는 걸까?

드디어 내 머리가 정말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른걸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