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2일 금요일

선풍기

살아있는 믿음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날수밖에 없다는걸 다시한번 기록해 두고 싶었다.

성 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또 다른 크리스챤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스스로는 많이 깨달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과 연 진정으로 얼마나 깨달았는지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마음깊이 새겨진 것들은 입으로 나오지 않고 행동으로 나온다.


그 저 손쉽고도 편하게, 사람으로부터 듣고 읽고 보아서 깨달은 바는 그 사람의 입으로 먼저 나오는데.. 그게 마치 스쳐 지나가버리는  바람과 같아보인다.

누군가가 불어댄 이런 강한 바람에 자신도 시원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시원함에 더불어 그 때의 기쁨도 감정도 더불어 전해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사람의 마음에 새겨질정도가 아니면 그  사람도 몇번의 바람을 불어대고서는 곧 잊어버리는게 태반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지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처음 나타난다.
행동은 비록 느리지만 다른이의 마음속에 조그만 자국을 남긴다.



나도 참 바람을  많이 맞은것 같다.

더운 여름날 한국의 큰 은행 에어콘앞에 서서 머리가 쨍하고 아플정도로 차가운 바람을 맞을때처럼  그렇게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바람도 맞아보았고,

어둡고 우중충한 구름이 가득찬 하늘 밑에서 새끼손가락 만큼이나 굵은  비와 함께 몸이 날아가버릴것만 같은 바람처럼 날 뒤흔드는 강력한 바람도 맞아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내 행동에는 얼마나  변화가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나도 그저 남에게 그런 바람을 불어댄것만 같아 너무 부끄럽다.




하나 님의 목적은 나를 변화시키는것이지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직 남에게 해야하고 또 하도록 허락받은건  복음을 전하고, 내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고, 세워주는것이 전부다.

좀 전에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은 믿음이나 깨달음  같은 것들은 마치 스쳐 지나가 버리는 바람같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이들은 마치 선풍기같다.

하나님으로 부터 전해받은 말씀을 스스로의 마음에 새기지는 않고서,
세상 이곳 저곳에서 듣고 보고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모터를  돌려,
그저 머리속에만 꽉꽉 채워진 그런 자신의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지 못해 안달인 선풍기같은 사람도 많은것같다...


나 도 내 머리속의 바람들을 이렇게 뿜어내면서 ... 조심스레 내 행동들을 뒤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없다.

정말 그렇게  많은것!을 깨달아서 내 행동이 이만큼! 변한건가?

올 여름도 더울것 같아 선풍기를 살까하다가 ... 오늘 내  마음속의 선풍기를 보았다.
이 정도면 올해 더위도 문제없을것 같다.

에휴.. 오늘 정말 덥다..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선과 악의 구별이 어려울때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기 힘들때가 많다고 합니다.

하 지만 혹시 두가지 악중에서 더 나쁜 악을 구별하는것이어서  구별하기 힘든건 아닐까요?

영화, 소설, 각종 드라마등에서 제시하는 선과 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때 선과 악이  아니라 두가지 악일경우가 많습니다.

선한것처럼 보이는 악과 누가 봐도 악해보이는 악을 놓고 무엇이 좋고 나쁜지  구별하다보면...

진정한 선은 마치 상상속에서나 가능해보이는 이상론에 지나지 않아보이거나 심지어는 선으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제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굳이  선과  악의 구분까지는 아니더라도...

..

..

아내와 한바탕 싸우고 난 다음 내가  옳으냐 네가 옳으냐를 놓고 생각해보면
둘다  옳지 못한경우가 대부분인것 같습니다.

..

제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것이 억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잘못한것이 없고 옮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억울함을 느낍니다.

제 개인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할만한 유일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을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조차도 죄인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그 억울함을  묵묵히 감싸안으셨습니다.

평소에도 늘 그랬지만 ..
오늘따라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볼때 너무나 보잘것 없는것 처럼보입니다.

전 아직도 못내 아내의 태도가 아쉽기때문입니다.

전  아직도 예수님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있는 답

언젠가부터 내 마음이 방황하고 있다는걸 느낀다.

동 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옛사람은 이미 죽었다는 표현을 자꾸만 되새기면서 지내는 요즘이다.


주위 를 둘러보면 가끔씩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 형제자매님들을 보게된다.

그런데 그 모든 고민에 대한 기본적인 대답을 모르는  형제자매님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것 같다.

오히려 그 기본적인 대답;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대답을 모두 얻은  분들이 고민한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풀리기 마련이기에 이런 분들을 만나면 좀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과연 나를 포함해서 크리스챤이라 불리우는 제법 많은 이들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고민일까?

세상을 버리고 나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겠노라고 외치던 내 첫 하나님과의 만남은 왜이리  변해버린걸까?

난 또 나도 모르게 '어떻게'를 생각한다.


이럴때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여야  하지만, 또한 이럴때마다 내가 예수님에 대해 아는것이 많이 없음도 깨닫는다..



우선 성경을 더 읽어  나가는것이 시작인것 같다.

음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다음은 일반적으로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어느 한 잡지사에서 올린 글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러한 글을 옮기는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떤 음악이냐에 따라 반드시 사람에게 특정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반드시  주의 깊게 분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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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은 불유쾌한 소리나 감정을 가려준다.
예컨대 치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  드릴의 그 불유쾌한 소리를 음악으로 감출 수가 있다. 바깥의 소음을 막기 위해서 집안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2. 음악은 뇌파를 느리게 낮출 수 있고, 원하는 수준으로 맞출 수가 있다.
예컨대,  베타파로 할 것인가, 알파파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음악을 통해서 그 뇌파의 파장을 조정할 수 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은 인간의 의식을 베타파에서 알파영역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사람에게 기민성과 안녕감을 높여준다.
3. 음악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호흡과 맥박, 혈압에도 영향을 준다.
호흡이야말로 리드미컬한  것이다. 대개는 1분간 25회에서 35회정도 호흡을 하는데 음악에 따라 호흡을 빨리 하게 하기도 하고, 느리게 하기도 한다. 깊고  느리게 하면 침착해지고, 감정을 조정할 수 있게 해주고, 사고를 더 깊이 해주며, 신진대사도 좋아진다.
얕고 빠른  호흡은 피상적이고 산만한 사고를 하게 하고,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들며, 실수와 사고를 더 잘 저지르게 한다.
4. 음악은 체온에도 영향을 준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 문이 “꽝”하고 닫히는 소리 등을  들으면 오싹해지고,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추위를 느낄 때가 있다. 소리가 체온에 영향을 주는 사례이다.
5.   음악은 엔돌핀을 높혀준다.
엔돌핀은 사람의 뇌에서 분비되는 마취제, 마약, 아편과 같은 호르몬이다. 엔돌핀은  통증을 줄여주는 일종의 “자연마약”이다. 영화음악, 종교음악, 행진악대, 북앙상블 등은 사람들에게 마약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일선 참호에서 총질을 하고 있는 병사에게 군악대의 힘찬 행진곡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한다. 임부가 분만할  때, 수술할 때 음악을 이용하면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
음악이 인체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서양에서 병원이나, 학교, 관공서, 작업장 등이 음악이 흐르는 공간으로 바꾸어지고 있다는 것은 음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출처 : 한방과 건강(2005년 7월호)

중간 지대

정말이지.. 중간지대는 피하고 싶다.

하 지만.. 중간지대는 너무 편하다..

내 모든 것들을 적당히  유지시켜주는 중간지대.

하지만 내 모든 것들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중간지대.

크리스챤의 삶은 더이상  "나"의 삶을 사는것이 아닌데도 ... 끊임없는 유혹과 안락함은 외면하기 힘들다.

휴~~

어느 인터넷 신문의 댓글을 보고

뉴xxxx 라는 인터넷 기독교 신문을 통해 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빌 하이벨스 목사, "우리가 잘못했다"  라는 기사였습니다.

기자가 쓴 내용은 윌로우크릭 교회 내부의 조사 보고서와 같은 책에서 윌로우크릭 교회는 회원수의  성장에만 성공적이었고 그 신앙의 깊이면에서는 스스로 잘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따라서 새로운 영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스스로 그와같은 점을 인정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는 내용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의 댓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발견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윌로우크릭  교회나 새들백교회가 그런 교회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자신들의 사역을 점검하고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어느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전... 그런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런 댓글을 보고 있자면.. 참.. 답답해집니다.

심지어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해도..
잘못한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할지, 그로인해 앞으로 무엇을  주의해야할지 등등의 성찰보다는..

결국 솔직해서 좋다, 잘못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는 오히려 대단한 교회구나.. 라는  식이니..

정작 중요한 고쳐져야할 것들과 그 동안 잘못 인도되었던 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것들은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휴....  생각이 많아집니다.


누가 잘못을 하고서는 후에 내 잘못을 인정합니다 라고 하면..
또 그점에 대해 이미  알고 있고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그런 것을 스스로 인정해서 대단한 겁니까?
아 니면 잘못한 것에 대해, 또 아직 고치지 못하는 점에 대해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겁니까?


크리스천들에게 모든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용서해주신 일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이후에도 반복해서 짓고 있는 죄들, 고치지 못하고 있는 죄들에 대해  혹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선 크리스천이라면 스스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데 어려움은 없을것 같습니다.

그 러나 그렇게 스스로 인정했다고 해서 그게 대단한 일입니까?
한 걸음 더 나가서, 심지어 평소에도 못고치고 있는 여러가지  죄들로 저는 아주 깊이 고민중입니다 라고 하면 거기에 대고 그 사람의 솔직함에 대해 오히려 높이 평가하고 싶으십니까?

혹 시 크리스천 독자중에 똑같은 죄를 짓는 것이 반복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
오늘 제가 읽은  댓글의 주인공에게처럼 과연 그 솔직함이 높이 살만한 일인지 아니면 그 회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더 부끄러운 일인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고치지 못할 잘못도 없고 회개하지 못할 죄도 없습니다.
인간이라서 모든 면에서 완벽할수는  없지만 스스로도 깨닫는 잘못과 죄에 대해서는 마지막 행동으로까지 돌아서는 참된 회개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살아계신다면 말입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라서 죄짓는 것에 어쩔수 없다는 말은 함부로 편할대로 가져다 붙이는 말이  아닙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는 바울의 고백은 그의 결론이  아닙니다.

2008년 1월 22일 화요일

내 안으로 돌려지는 외침

어느덧 한해가 밝아오더니 한달이 거의 지나 구정이  눈앞에 있습니다.

몇번이나 이곳에 글을 올리려던 기억들이 납니다.

그 렇지만..

이제는 이렇게 낯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한켠을 보여주려하던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수 많은 생각들과 답답함을 토해놓는 곳이 내 안으로 들어온 느낌입니다.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세워주고 격려하는  글들과 나눔의 글들로 가득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주님을 만날 날들은 다가 오는데도... 전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살때가 너무 많습니다.

지지리 유별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먹고 살 일에 조바심을  내고 주님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아마도 주님과 제대로된 만남을  가지지 못해서일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곳에 글을 쓸때는 스스로를 되돌아볼때 좀 더 나은 모습이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