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7일 목요일

2천 바스인가, 3천 바스인가? (왕상7:26, 대하4:5) / 김문수

출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719


개역: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왕상7:26)

개역: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넓이만 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대하4:5)

솔로몬이 만든 바다(molten sea)에 대하여 열왕기상과 역대하가 소개하는 정보가 서로 다릅니다. 열왕기상에는 그 바다에 2천 바스를 담을 수 있다고 했는데, 역대하에는 3천 바스를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그릇이길래 용량이 2,000 바스가 되었다가 3,000 바스가 되었다가 할까요?

그래서 기독교 안티 사이트에서는 이런 자료를 가지고 성경 말씀에 오류가 있다고 공격합니다. 기독교 안티 사이트의 열성 멤버들은 불신자가 아니라 대부분 신학교 공부를 마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신학교에 다니면서 발견한 각종 오류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된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잘못된 내용을 배웠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현대 영어 역본들을 읽어보아도 마찬가집니다.

NIV: It was a handbreadth in thickness, and its rim was like the rim of a cup, like a lily blossom. It held two thousand baths(왕상7:26).

NIV: It was a handbreadth in thickness, and its rim was like the rim of a cup, like a lily blossom. It held three thousand baths(대하4:5).

NIV에는 서로 다른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It held two thousand baths", "It held three thousand baths" 도대체 어느 것이 맞습니까?

NASB: And it was a handbreadth thick, and its brim was made like the brim of a cup, [as] a lily blossom; it could hold two thousand baths(왕상7:26).

NASB: And it was a handbreadth thick, and its brim was made like the brim of a cup, [like] a lily blossom; it could hold 30000 baths(대하4:5).

NASB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it could hold two thousand baths", "it could hold 30000 baths" 이 두 문장은 완전히 동일한 형식의 문장이고,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바다의 용량만 각각 2천과 3천으로 서로 다릅니다.

NKJV: It was a handbreadth thick; and its brim was shaped like the brim of a cup, like a lily blossom. It contained two thousand baths(왕상7:26).

NKJV: It was a handbreadth thick; and its brim was shaped like the brim of a cup, like a lily blossom. It contained three thousand baths(대하4:5).

NKJV(not King James Version)가 킹제임스 성경을 그대로 번역하되 고어 표현만 현대어로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위 두 구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It contained two thousand baths", "It contained three thousand baths"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맞습니까? 열왕기상이 맞다면 역대하는 거짓이 되고, 역대하가 맞다면 열왕기상이 거짓이 됩니다. 이 부분이 오류이건, 저 부분이 오류이건 간에 어쨌든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는 비판론자들의 주장이 대단히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개역이나 NIV, NASB, NKJV 등을 기초로 하여 집필한 수많은 훌륭한 신학자들의 주석이나 유명한 설교자들의 글 역시 이런 오류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손에 있는 성경 본문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주석에서 "이 부분은 필사자들이 실수로 잘못 기록한 부분이다.", "사본이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에 누군가가 실수로 숫자를 잘못 적었다." 혹은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한 문서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그 중에 정말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이런 오류들을 볼 때, 나는 성경 말씀이 오류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으며, 또한 그렇게 성도들을 속일 수 없다."고 하며 목회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그렇게 자세히 안 읽으니까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회자일수록 저런 역본들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 말씀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성경에 이런 오류가 있을까요?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이 순수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하여 변개된 성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고로 역대하 4장 5절을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 그리고 개역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역대하 4장 5절에서 바다의 용량을 나타낼 때 사용한 히브리어 동사는 두 개가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쿨(스트롱 코드 3557)과 하자크(스트롱 코드 2388)라는 두 개의 동사가 있는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receive와 hold 라는 두 개의 동사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이 구절을 열왕기상 7장 26절과 마찬가지로 쿨(3557) 하나만 번역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위 그림에서 한글 개역을 보면 <2388>은 "담"이고, <3557>은 "겠으며"로 번역했는데 두 개의 서로 다른 단어를 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바꾸어 번역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현대 영어 역본들 역시 이런 식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열왕기상 7장 26절의 동사도 hold(contain)이고 역대하 4장 5절의 동사도 hold(contain)인데, 용량 표기만 2,000과 3,000으로 서로 다르니 그들의 번역으로 읽으면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진리의 성경 말씀에 있는 오류가 아니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변개함에 따라 나타나는 오류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KJV: And it was an hand breadth thick, and the brim thereof was wrought like the brim of a cup, with flowers of lilies: it contained two thousand baths(왕상7:26).

KJV: And the thickness of it was an handbreadth, and the brim of it like the work of the brim of a cup, with flowers of lilies; and it received and held three thousand baths(대하4:5).

킹 제임스 성경으로 보면, 열왕기상의 동사는 contain이고 역대하의 동사는 receive and hold 입니다. 즉 이 두 말씀은 동일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보를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My car has a gas tank which holds 30 gallons; it contains 20 gallons of gas now."
(내 차의 연료 탱크 용량은 30 갤런인데, 지금은 20 갤런의 연료가 들어 있다.)

위 문장이 모순되는 내용입니까? 최대 저장 가능한 연료 용량이 30 갤런이라는 것과 현재 연료통에 남아 있는 연료량이 20 갤런이라는 것은 상충되는 정보가 아닙니다. hold는 총 수용할 수 있는 용량(capacity)을 말하고, contain은 현재 저장하고 있는 양을 말합니다.

열왕기상은 "바다에 물을 2000 바스 담았다"(It contained)라고 기록하였고, 역대하에서는 "그 바다는 3000 바스의 물을 받아서 저장한다"(received and held)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역대하 4장 5절은 최대 저장 가능한 물의 양이 3천 바스라는 뜻이고, 열왕기상 7장 26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물을 3분의 2까지 채워서 사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은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개역이나 현대 영어 역본들은 부실한 번역을 통해서 성경에 없는 오류를 자기들 스스로 만들어 넣었지만, 원래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런 오류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흠없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말씀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흠정역 성경은 이 영어 성경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흠정역 성경으로 이 두 구절을 비교하며 읽어도 우리는 이 말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흠정역: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였고 그것의 가장자리는 잔의 가장자리같이 백합의 꽃들과 함께 만들었으며 그것은 이천 바스를 담았더라(왕상7:26).

흠정역: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며 그것의 가장자리를 잔의 가장자리를 만들 듯이 백합의 꽃들과 함께 만들고 바다에 삼천 바스를 받아 둘 수 있게 하니라(대하4:5).

이처럼 사소한 부분 하나에도 오류가 없는 정확한 번역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탁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역본들을 사용하는 성도들은 성경을 대충 읽고 적당히 넘어가야 은혜가 되지, 자세하게 읽고 철저하게 공부하면 수두룩하게 발견되는 오류들 때문에 읽을수록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고 의심만 생기게 됩니다. 왜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자신의 설교에 대해서 따지지 말고 무조건 아멘 하고 받아들여야 은혜가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됩니까? 성경 말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하면 그들의 역본에서는 오류들이 계속 발견되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목사님들도 설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성경 말씀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직접 깨닫게 될 것입니다.

2011년 3월 3일 목요일

기원과학은 증명될수 있는가? / 김재욱

출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540


가정에 의한 가설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살았던 많은 이들이 인류의 기원과 지구의 기원, 나아가서 우주의 기원과 모든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며 살다가 죽어갔다. 지금 세상을 채우고 사는 이들에게도 '기원'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숙제이며 누구도 풀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적인 경로로, 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또 철학적으로 나름의 해답을 지니고 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해답을 제시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가장 타당하고 신빙성이 있을까? 대개의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과 과학 중에서 과학만이 믿을 만하고 검증된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과학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어떤 진보된 과학적 연구 방법도 지구와 우주의 나이, 또 기원이 된 사건이나 물질의 생성과 변화를 증명할 수 없다. 아무리 신빙성 있는 설이라 해도 증명되는 것은 아니며, 믿든지 안 믿든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기원에 관한 모든 연구 결과는 과거에 대한 어떤 '가정(假定)' 하에 산출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물이 교과서에 실리면 신빙성이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밝혀낸 것들에는 한계가 있으며,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셀 수 없이 많은 의문이 우리에게 남아 있으며, 그저 '자연의 신비' 또는 '경이'로 표현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일이 많다.

과학자들은 기원에 대한 궁금증과 탐구심으로 무언가 결론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과 계산과 추측을 통한 가설을 제시해 왔다. 예컨대 '빅뱅' 이론 같은 것이다. 주먹만 한 우주의 알이 폭발하고 팽창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은 거의 폐기되고 있다.

2011 년 초에 방영된 BBC의 다큐멘터리(Horizon : What happened before the Big Bang, 오른쪽)에서는 빅뱅 이론에 변화와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음을 인정했고, 그 대안이 되는 인플레이션 이론과 그에 대한 또 다른 반론 등 다양한 것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등장한 과학자들은 이론 발명가와 같았고, 그것을 유추해내서 특허라도 얻으려는 사람들 같다. 그들은 서로의 이론에서 모순점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유통기한이 1년 미만인 이론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이미 국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중에 인플레이션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있다(사진). 이는 진화적 방법의 자연발생설 외에 다른 것은 도무지 알려고 하지도 않겠다는 의도이며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강요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런 이론들 중에는 많고 적게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하나의 추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를 그 기원의 시간대로 데려다 주거나 그 시간을 끌어와서 재현해 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어진 컴퓨터 그래픽과 장엄한 음악,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타이틀이 마치 그런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만일 누군가 세계적인 과학자의 이론을 믿는다면, 그는 자기가 과학적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고 설명자는 자기가 설명을 잘했거나 굉장한 이론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듣는 사람의 세계관이 그것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뿐이다. 그 사람의 결정은 대부분 그의 세계관이 좌우했다는 의미이다.
과학자라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기원과학에 있어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연구와 발표만이 과학이 아니며,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주와 생물은 진화되었다는 굳은 믿음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는 각종 종교와 생물의 종교적 기원에 관한 혐오자이며 신 다윈주의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적 설계론 등 다른 것으로 세상의 기원과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 영화 <추방 : 허용되지 않는 지성(Expelled : No Intelligence Allowed)>에서 변호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벤 스타인(B. Stein, 유대인이지만 크리스천은 아님)이 '지적 설계론'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해답을 줄 가능성에 대해 묻자, "다윈 과정에 의해 진화된 고도의 생명체가 지구에 씨를 뿌렸을 수도 있으며, 혹시 그 증거로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에서 설계자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그 존재도 설명 가능한 과정을 거친 존재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벤스타인은 독백으로 반문한다.

"잠깐, 도킨스가 지적 설계론을 인정한다고?"

그는 이어서 말한다.
"도킨스는 지적 설계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형태의 창조주를 거부한 것이었다."

도킨스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생물의 구조들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것을 '강력한 환상’이라고 표현했다.(1) 그렇게 보이지만 환상으로 취급하고 믿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생각은 프랜시스 크릭(F. H. Crick)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생물학자들은 그들이 보고 있는 것들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 (2)

대개 과학자에게는 편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편견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이 사고와 결정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기원과학을 가르칠 때는 어떤 사람이 어떤 편견과 신념을 가지고 가르치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특정한 신념과 세계관에서 탄생한 학문이나 이론만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양한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먼저 그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현행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기원과학에 관한 이론들은 마치 가능한 사실인 양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다른 학설들은 발붙일 여지조차 주지 않고 있다.


기원과학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관점을 지닌 교사가 교과서를 집필하고, 가능한 한 편견 없이 이론들을 제시하여 학생들에게 각자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과학적 사고 함양의 기본적 자세가 아닐까. 과학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언제든 새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가능성은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하나의 시각에 가두고 그것이 그저 한 분야의 가설에 의한 과학임을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획일적인 사고로 몰아가는 것은 교사와 교육계의 직무유기이며 이에 관심조차 없는 부모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과학적 사고를 크게 열어줄 포용적인 교육정책과 자유로운 연구 및 토론 분위기를 촉구한다.

(1) R. Dawkins, Zoololist and Professor for the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Oxford University "Darwin Triumphant:: Darwinism as a Universal Truth," in Robinson M. H. & Tiger L., eds., Man & Beast Revisited, Washington DC: mithonian Institution Press, 1991, p. 24.

(2) F. H. C. Crick, What Mad Persuit(열광의 탐구): A Personal View of Scientific Discovery 1988, London: Penguin Books, 1990, Reprint, p.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