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도와주고 도움받으면서 / 옮긴글

 출처: 가나의 혼인집 ( http://www.cana.kimc.net/ )

한국에 있을 때
아마도 월드비젼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단체에서 저금통을 만들어 나누어주면서 저금통 다 차면 후원금으로 받았습니다.
많은 교회도, 길거리에서도 저금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해의 연말이 되니
무료 호텔 숙박과 세미나 한다고
참여를 묻는 전화에
무슨 비용이 이냐고 물으니
올해 후원금이 넘쳐 행사하고 남은 돈이랍니다.
전화 끝나고 참 허망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눌 돈이 아무리 많은들 남을리 없을 것이고
교회의 담임 목사님 부부만 초청을 하는 것이라니
그 숨은 의도가 후년에 더 많이 후원해 달라는 얄퍅한 상술같은 처사가
없지만 푼돈 모아 도우려는 따스한 사람들의 마음이나
코묻은 어린아이의 동전을 모아 그리 한다는 사실에
분하였습니다.

그 후로 여러 정황이나 정보들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그런류의 단체들이 일도 키우고 조직을 늘리려면
스텝들 급여를 비롯해 유지 비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실질적이 도움을 필요로 시작한 일이 후에는
점점 조직을 키우는 것으로 목표 수정이 되어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드리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돕는 마음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누구나 그 실망감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는 후로
단체에 대한 믿음을 포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빛도 없이 이름 없는 나눔으로 방향을 전환 하였습니다.
그 중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제게 좋은 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돕지 않았고
자신의 삶의 전개 속에서
자신의 역량이 되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해
물질과 시간에 대한 희생을 기꺼이 나누었고
주님이 말씀하신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참조 / 메뉴의 "주님비유"에 올린 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
한다는 것(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시 우리가 읻음 안에서 주님을 섬기고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서 이끄신다고 믿는다면
우리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의 도울 자를 만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 맞는 일로 말입니다.

이미 굳어진 프로그램에 의한 선행은
개인일지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또 시간이 흘러 마음과 신앙의 유지를 위해 꼭 해야 한다는 알량한 자기 의가 들어와 앉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순수했던 돕는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
스스로의 의를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상대의 허물에 분해 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돕는 일은 단순히
내 삶에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돕고
1회 성으로 끝날 일이면 1회 성으로
여러 번 할 일이면 여러 번으로 끝내고
또 다른 일을 만나게 하실 주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저의 삶을 그렇게 하니 주님께서 자유롭게
끌어 가십니다.
어떤 프로그램에 묶여 도와 가면 다른 도울 일이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다가와도 이미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외면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도울자를 만나게 하시고 그 도움이 그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는지
주님의 일하심을 알게 된답니다.

그 이후로 수입의 십분의 일은 되도록 모아 두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합니다.
누구도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도우려할 때 고개를 저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어려우면 상대의 도움을 감사히 받는 것도
체면을 구기는 것이 아니고
나의 낮아짐도 허용하여야 겸손할 수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아픔도 공감하고 배려하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내가 힘들어
모아 놓은 십일조를 다시 나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주님이 저에게 책망하실 것 같진 않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신앙용어'에 올린 '헌금의 의미(십일조)'를 꼭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도우면서
주님께서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한 몸에 붙은 두 손이 한 손의 일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돕되 얼마만큼 단순하게 돕고,
도움 이후에 도운 일들을 잊으라는 뜻이라고
저는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도 중요하고
또 도움은 언제나 상호간에
서로의 형편과 상황을 충분히 나누는 교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저 물질이나 시간만 나눈다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나
동물들에게 사료 주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주고 받으면서 동시에 정과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 감동하고
그 진솔한 나눔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사랑을 느끼게 되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