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5일 월요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


히브리서를 공부하면서 나누고 싶은 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적어볼까 합니다.

주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땅에 있었던 성소, 지성소, 휘장..
하늘의 성막과 멜기세덱의 계통을 이은 영원하신 대제사장..
이런 내용들이 히브리서에는 가득하죠..
그러면서 히브리서는 지성소,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표현은 야고보서에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너희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 (야고보서 4장 8절)

...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이 된 후에도 여전히 죄를 짓고, 상당히 자주 두 마음을 품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거죠.

죄의 속박에서 풀렸지만 죄의 속박속에서 경험했던 달콤한 고기맛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자꾸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는 겁니다.

어쨋거나 이런 크리스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잘 알고 있던 히브리인들에게,
예수님의 몸과 피로 휘장이 찟겨졌으며 이제 새롭고 살아있는,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또 말합니다.
손을 정결하게 하라고 하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손을 정결하게 할수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순결하게 할수 있나요?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관해 이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계시는걸 봅니다.


죄를 짓고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나님께 나아가기 싫어지지요.
때로는 하나님을 다 잊어버리고선 제멋대로 삽니다.
혹은 늦게서야 죄를 깨닫고선 한 동안 끙끙대다가 죄를 하나님앞에 자백하면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일단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고 나면 하나님께 더 쉽게, 더 자주 나아갈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앞에 자백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순결하게 변하는 걸까요?
혹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비로소 우리의 손이 정결하게 되는걸까요?



크리스찬은 죄를 자백하던, 죄 속에서 뒹굴고 있던,
내가 어떻게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의 피로 이미 깨끗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상태 그대로 일단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다가오는데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죄를 잔뜩 지어서 죄에 눌린 마음 그대로도...
정말 뻔뻔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그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다는 겁니다.

죄를 짓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 마음.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그 마음.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히브리서는 담대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히브리서 10장 19절)


혹시나..
담대함이 아니라 이건 너무 뻔뻔한거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겪었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죄에 짓눌려 살다가..
생각나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다음 기도를 마쳤는데...
그후에서야 미처 잊어버리고 자백하지 않았던 죄가 생각나신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머리가 좀 나빠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죄에 깊이 물들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럼..
미처 잊어버리고 생각해내지 못해 자백하지 못했던 그 죄 때문에,
제가 하나님앞에 나아갔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셨을까요?

아니면 죄를 자백할때 미처 기억해내지 못했던 그 죄 때문에,
그 이후에 나누었던 하나님과의 교제는 모두 거짓이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죄를 자백할때 정말 모든 죄를 자백했다고 자신하실수 있으신가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의외로 다음과 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내 양심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을때,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다시 순결하게 할 수 있다고 말이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내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겁니다.

아닙니다!

스스로 죄를 자백하는 것 따위로는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없습니다.
한 동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하신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때는 오로지 예수님의 피로 나아가는 겁니다.

내 양심을 한차례 털어내고선,
이제 내 눈에 깨끗해 보이는 그 양심에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게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를 뒤집어 쓰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비로소 우리의 죄들이 보이는 겁니다.

이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덮여있기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내 양심이 깨끗하고 훌륭해서 모든 죄를 깨닫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덮여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게끔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의 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앞에 나아갈 담대함마저 허락해 주십니다.

크리스찬들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건 예수님의 피로 인해 언제든지 나아갈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언제든지 입니다.

내 반쪽짜리 양심이 네가 그렇게 죄를 짓고서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냐고 나를 찌를때마다 예수님께서 피를 새롭게 흘리셔야 되는것도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 피를 드리신 것으로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앞에 그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숨고,
피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뒤로 미루기까지 할까요?



행여나 죄책감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걸 막고 있다면,
그건 죄책감이라기 보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자란 것일겁니다.
그건 예수님의 피의 값어치를 잘 모르는 것이고,
그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일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신것인지 여전히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겠지요.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그래서 늘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들어있고,
그 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복음안에 들어있습니다.

내 죄로 인한 죄책감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을때조차,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고,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고,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손을 정결하게 하고,
예수님의 피로 두 마음을 품은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당장이라도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늘 하나님께 나아가 항상 승리하는 형제 자매님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항상 주변을 돌아보는 따뜻한 형제 자매님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치실 것입니다.



..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보배로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