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2일 수요일

유명해지기의 덫

아래의  글은 김재욱 형제님께서 www.keepbible.com 의 자유게시판에 올려주신글을 갈무리 한것입니다.

링 크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의 자랑

여자보다는 남자가 좀 더 강하다지만 누구에게나 명예욕, 즉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두들 자기가 열심히 뛰는 것에 대해 특정한 의미부여를 하거나 빙빙 돌려서 말하고 대외용으로 포장도 하는데, 유명한  테너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는 정면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려지고 인정 받기 위해  일한다."

그래서 '인생의 자랑'이란 과연 죄성을 지닌 교만한 인간의 기본 속성이며 성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숙제라 할 수 있다. 물론 명성을 얻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 의해 유명해지며, 그 열매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이 주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그의 명성이 온 지역에 두루 퍼지니라. (수  6:27)

주께서 이집트 사람들의 눈앞에서 백성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또 이집트 땅에서 그 사람 모세를 파라오의 신하들의 눈앞과 백성의 눈앞에서 심히 위대한 자가 되게 하셨더라. (출  11:3)

이런 이유, 이런 과정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유명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지혜로 이방 국가들에까지 명성이 높았던 솔로몬처럼 마무리가 찜찜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

현대인들은 메신저 창에 그득한 친구들의 아이디를 세며 (생전 대화 한 번 하지  않을지라도) 뿌듯해 하는 존재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알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며, 그들 중 유명인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있으면 그것을 자랑이자 재산으로 여긴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얼굴 도장을 찍고 인맥을 넓히려 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을 안다는 것에는 함정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알면 그것이 내게 영향을 미치고 법이 되듯이,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의 영향력과 말과 생각이 내게 법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를 취재한 기자의 글은 천편일률적으로 인터뷰 대상에 대한 애정과 칭찬과 호의로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잡지사에 근무할 때도 기자들이 취재에 나갔다가, 갑자기 떠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버릇없는  연예인들을 만난 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돌아오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그래도 써 놓은 기사를 보면 칭찬 일색이다. 일단  인터뷰를 해 보면, 상대방이 다소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해도 다 빼고 좋은 점만 쓰게 되며, 자꾸만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전에서 웃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내가 다니는 교회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스펠 매직을 하는 강사가  초빙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교육목사가 승인한 일이었다. 나는 의분을 느끼고 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마술에 대해 글을 썼다. 전에 이곳에도 올린 적 있는 그 글을 처음 쓰게 된 동기이다.
며칠 후 행사가 시작되는 날 쯤, 전화가 걸려 왔다. 스쳐 지나간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바로 그 신임 교육목사였다.
"아무개  목사인데요... 한 번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안녕하세 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인터넷에 올리신 마술 관련  글 때문인데요..."
"아,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전화보다는... 뵙고 말씀을 드릴게요."




대충 눈치는 챘지만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 점심을 같이 하게 됐다. 나보다 서너 살 젊은 그 분은 인품도 인상도 좋아 보였다. 대화 내용은 대략 이랬다.
"매사에 오해가 생기는 이유가... 서로 만나면 해결될 일이 많은데, 안 만나서  문제가 커지더라구요."
"아, 네..."
"올리신 글에는 저도 대부분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가스펠 매직을 하는 분이  교회에 와 계신데 그 글이 떠 있으니까 혹시 볼 수도 있는데, 기껏 초청해 놓고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직접  보니까 심각한 마법 같은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트릭을 쓰는 것이고요... 내용에 복음이 담겨 있더라고요. 요즘 교회 아이들은 별  짓을 안 하면 딴 짓을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힘든 일이 참 많지요.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모든 일이 가하고...."
이런 내용에 대한 반박도 이미 글에서 다룬 것이었지만 논쟁을 하기가 어려웠다. 한편,  그의 목사라는 직함, 많은 아이들을 동원해야 하는 책임감, 부흥에 대한 열정 또는 새로운 포부, 이미 벌어진 일을 철회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이해가 됐고, 직접 나서서 일도 안 하면서 괜히 방해만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너무 교만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게 지었다.
"저의 입장은 바뀐 게 없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교회의 입장을 존중하는 뜻으로 글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일로 사람을 만나면 안 되겠다는 것뿐이다.
오래 두고 보아도 그 분이 그리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요즘에 와서는 청소년과  성도들에게 창조과학 알리기에 열심을 내고 있기도 하다.
만 나서 오해를 풀고 그리스도인들끼리 순수하게 교제하며 마음을 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교제를 가장해 인맥을 이용한 명성을  쌓으려 한다거나 그것 때문에 더 중요한 가치를 양보한다는 것은 소탐대실이며, 주객전도일 것이다.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물러서면 안 되는 것들까지 너무 많이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고받는  면죄부에 싹트는 우정

얼마전 어떤 분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천국 지옥 직접 패키지투어(?) 간증  동영상을 추천했다. 그야말로 불교의 '회심곡'에 나오는 지옥보다 더욱 황당한 지옥 묘사, 펄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에 나오는  것보다 더욱 비성경적인 천국 묘사에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내가 더욱 맥이 빠진 이유는 그분이 내가 건네는 책도 잘 읽고 공감하며, 킹제임스 성경 신자가 될 수 있는 유력한 후보 중 한  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느끼는 감정은, 어릴 때 고이 숨겨두었던 동전으로 핫도그를 사서 한 입 베어 물려다 빗길 진흙탕에  떨어뜨리는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간증을 한  젊은 여전도사가 있는 교회의 목사는 이단 시비에 휘말린 사람이었다. 그가 쓴 책의 제목만 봐도 황당했다. 구원 받은 사람도  (구원을 잃고) 지옥 간다든지, 축사의 필요성, 귀신의 존재, 은사가 어떻고, 직통계시 등등... 그런데 이 목사가 최근 이단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간증이 담긴 카페는 회원수가  수만 명, 숭배 수준의 찬사 일색이다. 모두 매니아는 아닌 것 같고, 나처럼 소개를 받거나 대체 뭔가 하고 왔다가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대서 가입한 사람들도 많을 터였다. 아무튼 등급이 올라가야 덧글을 달 수 있으니 아무나 비판적 글을 달 수가 없게 돼  있었다.


문제는 그 교회의 변모 목사가 어떻게 이단에서 풀려났느냐는 것이다. 그의 부흥회  동영상 중 하나를 보니 바로 해답이 있었다. 이단 색출 단체 등이 자기를 정죄했지만 요즘 자기가 조용기 목사랑 만나고 집회에 함께  다닌다는 것이었다. 또 '신앙계' 등의 잡지에 글을 실었는데 아주 반응이 좋고, 아예 연재를 해 달라고 했다며, 내가 이단이면  그런 활동이 가능하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아주 간단하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비방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 사람 외에도 많은 이들이  조용기 목사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넘어가고 있다. 아예 예전에 개그맨 서세원이 흉내내던 조 목사의 특이한 말투까지 성대모사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부흥강사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말 괜찮았던 교계의 지도자들도 그와 연합하고 또 서로 연합하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일으킨 조용기 목사와 회동을 하면 꽤 유명해진다. 주목을  받고 덩달아 세상적인 영향력도 커지는 등 얻는 것이 아주 많다. 다만 영혼을 팔아야 한다. 그와 손 잡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도 인정해야 하며, 그가 끌어안은 온갖 괴상한 교리들도 함께 떠안아야 한다.  그것이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큰 대가이다. 그런데도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그 명성에 줄을 대며 '키워 달라고' 아우성 친다.
참  능력의 원리를 무시함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유명해지면 더 큰 힘을 얻어 복음을 전하고, 더욱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원리를 알되 실제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 앞에 죄스럽게 여기기도 하는데, 그  또한 '허비의 원리'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아니, 알지만 자신에게는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도원에 갇혀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겠으나 하나님이 들어올리시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 높이려 한다면 그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호텔의 연회장과 큰 교회의 연합모임에서 만나 서로를 높여주는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비판 정신과 바른 이성을 저버리고 어제 만난 유명인사들을 칭찬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신을 높이게 된다.


이런 것이 사람간의 이치인데, 한 가지 예외적인 일도 있다. 정치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웃으면서 악수하고도 박터지는 토론에서 상대를 면전 반박한다. 끝나면 다시 웃으며 악수 및 기념촬영을 할지라도 절대  굽히지 않는다. 각계의 반대 성명이나 단식투쟁이 있다 해도 여당 대표는 요지부동이며, 청와대에서 밥을 얻어먹은 야당 지도자는 입 싹  씻고 비판 성명을 낸다.
대체 그들을 이처럼 낯 두껍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것은 물론 소속 정당이 추구하는 목적이요, 투철한 정치이념일 것이다. 그러면 목사와  교계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보다 얼마나 하찮은 것이기에 그토록 무뎌지고 물러 터져서 섞이고 섞여 양날 달린 검은 고사하고  물에 젖은 솜방망이만도 못한 것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일개 정당의 당론만도 못한 진리, 일개 정치인의 이념만도 못한  신앙이라니...

여기 또 한 종류의 '명성'에 관한, 잘 알려진 말씀이 있다.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사람들의 딸들이 그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창 6 :4)

스스로 유명해지는 것은 덫에 걸리는 일이다.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진실을 말할 능력이나  자유가 없게 된다. 진리를 양보하고 영혼을 팔면서까지 강력해지고 유명해지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들에게 돌아올 영광이란 그 옛날 거인족들이 얻었던 죄악과 불명예의 명성뿐일 것이다.
너무 과도한 비교라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팔아먹은 참된 교리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구원의 진리 때문에 우리의 가족일 수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한 영혼이 도매금으로 지옥에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4:11)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세워주는 것

글을 쓰다가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을 나누는 것도 좋고,  권면의 글도 좋지만 언뜻 성경에서 읽은적이 있는.. "세워주라" 는 말씀이 생각나서

세워주는 글이야말로 정말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지요.

그래서 일단 언젠가 성경속에서 보았던, 머리속에  기억나는 단어인 "세워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성경에 나와있는 가치있는 일인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서 세워주는 것에 대해서 성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의 기준 성경인 흠정역 성경에서는 edify 라는 단어가 제가 찾고자 하는  세워준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더군요.

또한 이 단어는 오직 신약성경에서만 쓰이는 단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리고 이 단어를 중심으로 찾아진 성경말씀들을 읽어나가면서 참 귀한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말씀으로  확인하기전에 내가 가졌던 대략적인 개념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칭찬 정도였습니다.

부 드럽게 말하고 웃어주고 특히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 칭찬해주는..

그런 격려와 칭찬이 곧 "세워주는" 것이  아닐까 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좀 넓게 보면 누군가를 돕는 것, 혹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그를 세워주는 것에  포함되겠다는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주는 것은 역시나 달랐습니다.

우 선은 무엇이 세워주는 것인지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성경구절입니다.

고린도 전서 8장 1절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고린도전서 14장 4절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저 는 성경 말씀속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를 만날때마다 도무지 감당할수 없이 큰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면서 나를 구원하셨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를 보며  "사랑"한다고 표현할때도 자주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이야기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  등장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 말입니다.

그렇 습니다. "사랑"이 바로 세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새롭게 알게된 것이 바로  "대언하는 자"가 주님의 몸인 교회, 곧 지체들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는  것에 그칠 뿐이고 부패한 대화는 입 밖으로 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은 교회를 세운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은 제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 랑과 대언.

이 두가지야말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세우는" 일입니다.

사 랑하면 희생하겠지요.

돕고 격려할뿐만 아니라 나를 희생할것입니다. 이로써 그를 세워주게 될 것입니다.

그 리고 대언을 해야하겠습니다.

부패한 대화도 없애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없애며

사랑없이  지식만으로 우쭐대는 것도 없애야 겠습니다.

사랑으로 희생하고,

사랑안에서 나누는  진리가 화제가 되고 그 진리의 말씀을 나누는 대화를 늘여야 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사랑과 대언. 이 두가지가  오늘 제가 배운 세워주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