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7일 금요일

누구 맘대로 기독교 대표 행세인가? / 김재욱

출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054&page=


왼쪽부터 김경재 목사, 길희성 교수, 폴니터 교수, 수불 효담 미산(승려들), 이정배 교수, 정현경 교수.

2011년 1월 5일 저녁 서울 양천구 조계종 국제선센터에서 종교 간 토론회가 열렸다. 달라이 라마에게 법명까지 받았다는 뉴욕 유니언신학대 석좌교수 폴 니터의 방한 기념으로 개최된 것으로, 최근 불거지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였다. 불교 쪽은 모르겠지만 기독교 쪽은 거의 구원받지 못한 신학자들이 참석한 것 같다.

누 가 그들에게 기독교의 대표라는 권한을 주었는가. 거의 모든 종교간 대화가 이런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지만 대중들이나 크리스천들은 뭔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려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의 변방에도 끼워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참된 그리스도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인정한 바 없으며, 단지 논란 없이 신문 지면을 장식할 이야기들을 잘 골라서 해줄 수 있는 종교꾼이기 때문에 종교 담당 기자들만이 환영할 뿐이다.

"한국인의 문자와 책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이 성경무오설이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이 올가미에서 극보수 기독교인들이 벗어나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

김 경재 목사의 주장이다. 그는 '길은 여러 개지만 하나로 통한다'는 식의 이른바 등정로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의 저서 '이름 없는 하느님'은 종파적 유일 신앙에서 우주적 생명, 즉 모든 종교를 통해 이를 수 있는 최종 목적지로 가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예수나 부처는 당시 관습과 권위, 전통에서 자유로웠는데, 이는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다. 이들은 사즉생(死則生), 죽음을 통해 살았고, 무한한 자유를 바탕으로 헌신과 사랑, 자비의 길로 나아갔다. 불교의 공(空)과 기독교의 사랑은 둘이 아니라고 본다. 이제 창조적으로 서로 만나야 한다."

'보살 예수'라는 책의 저자이며, 예수와 부처는 '천하의 자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 서강대 길희성 교수의 말이다.

참 석자들 중 정현경 유니언신학대 종신교수라는 여성 신학자는 1991년 호주 WCC에서 흑인, 무당, 토착민, 순교 당한 영들을 부르며 초혼제를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다. 한편 1993년의 한 여성 회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불교, 힌두교, 그리고 필리핀 여신들로 구성된 '새로운 삼위일체'의 채택을 역설하기도 했다.

폴 니터는 기독교가 종교 간의 대화에 나서기 전에 보수적 기독인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식민주의, 제국주의 등 여러 폭력의 역사도 기독교만이 참된 믿음이라는 데서 촉발됐다며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물 론 이런 식의 이야기는 신물나게 들어온 것들이다.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조금씩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의 대립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결국 한국도 종교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기독교가 사수해야 할 가치들은 사회법에 의해 제약을 받게 될 것이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준법적인 품위 있는 종교인들이 되어갈 것이다.

이 토론회를 경청한 한 유럽인은, 왜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한국의 미래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교회들의 미래도 유럽처럼 공허해 질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교회의 월간지에 싣기 위해 연령별 청년들을 모아 토론회를 실시했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중 20대 중반의 한 청년이 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 한국 교회가 늘 교파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하나 되는 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언젠가 한국의 모든 교회가 하나로 모여서 무언가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을 것 아니에요. 하지만 각 교파가 따로 행하고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한국 교회를 대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천주교 같은 경우는 교황이 있잖아요. 그러면 모든 천주교인들이 듣는다고 해요. 그걸 들은 모든 교인이 들은 대로 행하니까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어요. 기독교도 하나로 모인 선한 영향력을 하나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얘기를 다 싣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싣는다 해도 아무도 문제를 삼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토록 열성이라는 한국 교회의 열매이다. 이 젊은이들은 또 어떤 열매를 맺게 될까.

"긍정적인 마인드로 진리만 빼고 다 바꾼다."

변 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고, 하나로 힘을 모아 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교회에서는 다른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심장만 빼고 다 바꾸면 그것은 이미 다른 것이거나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생각으로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연합하고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교회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성 경을 그대로 믿지 않겠다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러면 무엇으로 행동과 정의와 옳고 그름을 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해답이 100%이고, 어떤 말에 거짓이 없으며, 어떤 생각이 완전한가? 물론 그런 것은 없다. 이런 해답을 성경에까지 적용한 것이 그들의 실수이다.

결 국 그들은 좁은 머릿속에서 넓은 우주적 생명을 꿈꾸며, 등잔불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여러 개지만 결국 등잔은 하나라는 큰 깨우침에 기대어, 표류하는 진리와 결론 없는 지식을 붙잡고 멸망의 길로 달려갈 뿐이다. 그들의 헛된 생각은 마귀의 교리가 되어 우매한 종교인들을 지배하고, 끝내 그 큰 무리가 불의 호수를 향해 달음질하는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신, 당신들의 아비는 누구인가? 왜 우리는 이토록 다른 말을 하고 있는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로다. 너 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8:43~45)

2011년 1월 5일 수요일

지구 중심설과 성경문제 / 김학준

출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001

요즘 keepbible에 지구중심설/지동설에 대해서 많이 논의가 되고 있는데요, 성경을 보는 관점에 일부 혼동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점심시간을 통해 저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원래는 김재욱 형제의 글에 댓글로 달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여기로 옮겼습니다 ^^)
일단 지구중심설/지동설은 상대운동 관점에서 보면 다 설명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구중심설도 5-6가지나 되고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도 있고 우리 태양계에서는 태양과 달만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다른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이론도 있고 이 역시 설명이 된다고 하고 증명을 위해서 직접 보일수는 없으니까 천체 해석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잡한 물리법칙등을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저 역시 이런 천체 분야의 지식은 없습니다.
또한,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천체 물리 지식을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지식을 검증하겠다고 나서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 분야가 생업인 과학자들도 갑론을박하며 서로 물러서질 않는데 전공도 아닌 우리가 어디 명함을 내밀겠습니까 ?
우리는 큰 그림만 분별하고 볼 수 있는 능력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상대운동의 개념과 지식의 한계를 같이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우선, 이런 간단한 상황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여러분이 조수석에 타고 있고 아내가 운전석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120kph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의 차선 뒤에 멀리 떨어져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우리차를 향해서 빠르게 달려오는 경우에 우리가 느끼는 것은 아마 2가지 일 것입니다.

1) 아내가 차속을 줄였거나

2) 우리가 120kph정속인데, 상대차가 차속을 올린 경우일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운동의 물체에 속해 있고 조수석에만 있는 우리는 어느 것이 맞다고 결론 지어야만 할까요?
없습니다. 현상학적으로 위의 2가지 모두 정답입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물어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아내가 차속을 줄였다고 하면 이 이유로 인해 차의 간격이 좁아진 것이고 아내가 정속에 있었다고 하면 상대차가 차속을 올린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답은 1가지로 결정이 됩니다. 즉, 우리가 reference를 알고 있으면 진리는 반드시 하나입니다.
상대 운동의 관점에서 정확한 운동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준점이 받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주의 기준점, 인간이 아는가요?,
시작도 끝도 모르는 우주의 팽창속도 인간이 정확히 아는가요 ?

우주 탐사 프로그램이 인간의 역사에서 시작된 시점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지 금의 인류는 지구상에서 한 나무의 입사귀를 오르는 개미정도에 지나지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미가 느끼는 중력/자기장/표면장력이 이 지구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을까요? 전혀 다릅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제한된 과학 지식을 가지고 우주의 운동을 논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과학을 절대적인 가치로 둡니다. 하지만 과학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들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주눅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과학은 How와 Why의 엄청나게 큰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Why가 과학의 시작점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으나 이는 관찰되는 현상학적 문제에 국한될 뿐이고, 보통 우리의 과학은 How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한된 범주내에서 말이지요.
왜 존재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과학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것임을 스스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철학/형이상학에서 찾아 보라고 하지요.
모든 과학이 터무니 없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하나의 케익이 있습니다. 관련된 식품영양학자/화학자/물리학자/수학자들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입니까?
칼로리의 수, 칼로리의 효과, 단백질의 구조, 화학적 결합구조, 구성입자, 입자들과 관계된 수십만 가지의 복잡한 방정식들뿐입니다.
우리는 이런것들을 정립하는 그들에게 끝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과학은 "왜" 만들어져 있는지는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합니까 ? 간단합니다. 당연히 만든 아줌마에게 물어보아야지요.
케익에게 "왜"하고 물어보는 것이 정신나간 행위이듯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창조주에게 물어보아야지 과학지식으로 우주를 쥐어짠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없습니다.
케익에 물어보는 것은 정신나간 것으로 생각되는데, 우주에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접근해서 근원을 찾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겠지라고 수긍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상하지요 ?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완벽하지 않은 과학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한계 역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도출되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는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현재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는 근원적인 why에 대해서 유명 과학자의 입을 보고, 얼마나 천재인데 맞겠지 하면서 막연히 그의 주장을 지지하고 따릅니다.
앞의 예와 같이 "아내"의 역할을 하는 Reference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다수를 형성하고 있으며, 진화론를 지지하는 천체 과학자들의 입을 Referecnce로 삼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대로 믿는 자들입니다. 절대 기준점을 모르는 상대운동에 속해 있는 우리는 Reference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따라 해석한다고 해서 우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들이 주장한다 하더라도 겁내실 필요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일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셋째날:넷째날 창조 / 여호수아 / 히스기야등의 사건 기록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구상의 대기류가 자전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아 생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고 계신데, 대기학자들도 이것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구의 대기류는 태양의 복사열로 인한 열/물질의 이동(밀도변화)에 의해서 주로 결정되지 자전은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속도가 1600kph인데 우리가 그 소리를 못듣는 것은 우리의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서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맞는 것같으면서도 틀린 말입니다. 우주에는 매질이 없으므로 우리의 대기와 아무런 마찰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SF영화에서 우주선이 광속이상으로 이동할때 굉음이 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역시 허구입니다. 매질이 없기때문에 소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런 주장들을 보면 세상 지식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지요.
그들의 주장대로 지구가 자전을 한다고 하고, 성경기록대로 멈추게되면 이는 이미 검증된 관성에 의해서 엄청난 재앙이 지구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는 멈추어져 있고 우주가 움직이다가 멈추게 되면 우주와 지구의 대기간에 마찰이 없기 때문에 지구에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히스기야 사건후에 지구에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은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 기록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지구는 안 움직인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구밖의 멈추어진 행성에는 관성의 법칙이 유효하다면 아마 엄청난 격변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구밖에 하나님은 생명체를 놓아두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기록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저함 없이 생명체가 없는 행성을 인위적으로 멈추게 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수백~수십억년의 우주 역사를 통해 적어도 하나의 외계생명체 존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진화론적 근거에 의해서 "무"에서 다시 새 생명체가 탄생할려면 수억년이 걸린텐데 그럼 히스기야 시대 이후로, 이들의 계산상으로, 아직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사견이지만, 지구중심설을 따른다면 말이지요.
하나님의 존재와 주님의 부활과 휴거, 공중 재림은 믿어도 이것을 믿지 못하다면 안타깝게도 크리스챤이라고 불리우기는 하지만 성경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불신하는 믿음이 절대로 바른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휴거, 공중재림보다 이것이 더 믿기 쉽지 않나요 ?
크리스찬이 어려운 것은 믿겠는데, 이 보다 더 쉬운 것을 불신하는 것은 세상의 지식에 가리워진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은 진화론이든,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사람은 자기가 그 동안에 취해온 지식을 기준으로, 자신이 믿고 싶으대로, 자신의 믿음을 정립합니다. 말씀을 따르자니, 너무 불편한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한된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한성과 작품에 대해서 평가하려고 하는 우리의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가 혼동에 빠질 것을 아시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 (딤전 6:20, 킹흠정)
[참고 : 영어 킹제임스 성경외에 다른 모든 영어성경에서는 "과학(Science)"이 단순히 "지식(Knowledge)"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은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는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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