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8일 금요일

사랑이란...

사랑이란 ... 이라는 질문에 가끔씩 답을 고민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란... 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던 어느 외국 만화가의 단편 만화 시리즈도 생각나고,
TV에서,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밤을 새며 들었던 사랑이란... 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지했던 대답들도 생각이 납니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고, 소설로, 때로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사랑이란... 이라는 질문에 그때 그때마다 다른 대답들을 고민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어릴때에는 가슴이 터질듯이 두근거리는 그런 느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대학생 시절 결혼한 선배들에게 들어왔던, 사랑은 의리라는 식의 메말라버린 감정을 감싸않는 듯한 대답에 그건 사랑이 아닐거라고 대답하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나 항상 사랑이란... 이라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은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 저는 고3때에 예수님을 알게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성경에 대해 배운적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더 알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수험생 동안의 많은 시간동안 쌓였던 것들을 털어내느라 방황하며 지내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구원받은 이후에도 사랑이란... 이라는 질문에 고민하며 청년의 시절을 보낸것 같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곳 독일땅에서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머무르면서 결혼도 가고, 아이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비로소 사랑이란... 이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사랑이란 배우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가 대학시절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그런 대답들이나 제가 말한 대답이나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는 가장 확신있는 대답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성경이 가르쳐주는 사랑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고민했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성경이 가르쳐주는 사랑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에 역시 또 고민했었습니다.

제가 아직 세상속에 살면서 육신을 벗지 못한 탓일까요?
아직 성화가 되지 않아서 일까요?
죄 많은 사람이라 천성적으로 어쩔수 없는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제 자신에게 대답하며 넘어가는 것을 과연 언제까지 해야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답을 얻은 제게 이제는 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사랑을 배울것입니다.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참 사랑을 가르쳐주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랑을 배울것입니다.

성경속에 기록해 두신 많은 기사들과 편지들을 읽어가며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바른 사랑을 배워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사랑을 배워나갈 때에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도 주실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저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이 더이상 낮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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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장 19절.

2011년 2월 17일 목요일

모세의 빛나는 얼굴 (출34:35) / 김문수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모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말씀을 나누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34:35).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w the face of Moses, that the skin of Moses' face shone: and Moses put the vail upon his face again, until he went in to speak with him.


출애굽기 34장에는 모세가 하나님과 말하는 동안 그 얼굴의 피부가 빛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 이야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하는 설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가끔 모세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성경의 기록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도 있습니다.

이 성경 기록의 핵심은 "하나님과 교제하면 얼굴에 빛이 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두려워하자 모세가 베일을 썼다", "모세는 자기 얼굴의 광채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베일을 썼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자기 얼굴을 가렸을까요? 출애굽기 34장과 함께 고린도후서 3장을 대조하면서 이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백성들이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두려워하여

소 설이나 영화에서는 도둑이나 자객이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해 복면을 쓰기도 하고, 천하절색의 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베일을 쓰기도 하고, 얼굴이 보기 흉한 사람이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기 위해 면사로 얼굴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얼굴을 가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당시 용모가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고, 감추어야할만한 흠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항상 백성들과 대면하여 소통을 해야 하는 지도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얼굴을 가린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을 보면 그런 추론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보니, 보라, 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므로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였더라(출34:30)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고후3:7)

성 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세가 베일을 써야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조폭의 흉악한 얼굴이 무서우면 멀리 도망을 치거나 경찰과 동행해야지, 그가 복면을 쓴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베일을 쓰거나 벗거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모세일 뿐입니다. 성경은 백성들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고 기록할 뿐, 모세가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을 가렸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즉 모세가 쓴 베일은 백성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처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 모세가 사라져가는 영광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두 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모세가 자기 얼굴의 광채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백성들이 볼까봐" 두려워해서였다는 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빛이 나게 되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그 자랑스러운 영광을 한껏 과시하고 싶었는데 그 빛이 점점 사라져가자 자기의 그런 모습을 백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베일로 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누가 제일 처음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Q.T.나 명상 등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깊이 교제할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적인 수행을 통해서 영성을 계발할 수 있다고 하는 은사주의자들,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경적 근거로 고린도후서 3장 7절을 제시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성경적 근거가 아니라, NIV적 근거라고 해야 합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영광인가, 없어질 영광인가?

NIV: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고후3:7)

NKJV: But if the ministry of death, written and engraved o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passing away,

흠정역: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KJV: But if 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behold the face of Moses for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to be done away:

현 대역본들 중에서 NIV, NASB, NKJV 등은 "was fading", "was passing away" 라는 과거진행형 표현을 사용하여 모세의 얼굴에 있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것을 "없어질 (was to be done away) 영광"이라고 했지 그 영광이 점차로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진행형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지만 그것은 곧 없어질 영광이었고, 잠시 후에는 사라진 것이 되었습니다(고후3:13).

그러므로 모세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영광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도자로서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기 얼굴에서 그 영광이 사라져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적합한 해석이 아닙니다. 영성 훈련 지도자들은 종종 하나님과의 교제의 유익한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야광 물체를 빛에 쪼였다가 어두운 곳에 가져가면 빛을 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이 희미해진다. 휴대폰 배터리도 쓰다보면 전기를 소모하여 다시 충전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도 영성 운동을 통해서 계속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소멸되거나 닳아 없어지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백성들이 영원하지 못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세 번째 견해는,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하지 못한 것에 주목하지 말고, 영원한 것에 관심을 두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3장 13절과 출애굽기 34장 32, 35절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개역: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후3:13)

한글킹: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없어질 것의 종말을 지켜 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같이는 아니하노라.

흠정역: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 같이 하지 아니하노라.

KJV: And not as Moses, which put a vail over his face,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look to the end of that which is abolished:

고 린도후서 3장 13절에서 한글킹제임스역은 개역의 번역을 따라 "없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which is abolished"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동 완료형"입니다. 따라서 "없어질 것"이 아니라, 흠정역과 같이 "사라진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도록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여기에서 "사라진 것"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잠깐 있다가 없어진 그 광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모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말씀을 나누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34:35).

그 뒤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므로 그가 주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으로 주니라(출34:32).

오 늘날 한국 교회의 부흥사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은 교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자기의 존재감과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중에서 금가루가 떨어진다거나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할 수만 있다면 대규모 집회를 열어서 말씀은 뒷전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그 빛나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아왔을 때, 그들은 그로부터 두 가지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얼굴에서 밝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광채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눈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는 차단해버리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청각 정보만 남겨두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 보이다가 없어질 영광을 보지 말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원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눈에 보이는 신비주의적 체험을 쫓아다니지 말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후5:7)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고후4:18).

2011년 2월 10일 목요일

KJV 성경의 400 주년의 기념으로 NIV 성경을 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프로그램도 이것 저것 다운받아서 써보기도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들 중의 하나가 YouVersion 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래의 메일은 YouVersion 이라는 회사로부터 조금 전에 받은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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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ited Time: NIV Available Offline on YouVersion

2011 marks the 400th anniversary of the publication of the King James Version (KJV) of the Bible.
To celebrate this milestone of making God’s Word available in the common language of the people, all throughout this year, YouVersion will be highlighting several special events and opportunities that will make it easier than ever to access, engage and share the Bible.


The first event we’re excited to tell you about is a special 400-hour promotion made possible
through a partnership with Biblica and Zondervan. Exclusively through the Bible App™ you’ll be able to download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using an iPhone, iPad, iPod touch or Android device…absolutely free. Downloading the NIV means you’ll be able to read it anytime, anywhere—even when you can’t connect to your service provider or the Internet, and after the 400 hour promotion is over. This special offer only lasts for a limited time, starting THIS SATURDAY, February 12, at 8:00 PM U.S. Eastern Time (GMT-5) and ending at 12:00 p.m. EST on Tuesday, March 1, marking the first availability of the NIV update in print. For more details about the availability of the NIV offline on your mobile device, follow http://blog.youversion.com.


And even if you don’t have an iPhone or Android device to take advantage of this first offer, we have something for you, too. We continue adding new reading plans to help you connect with God’s Word, with more than 60 available now! One seasonal example is the 5-day “Love and Marriage” plan. If you and your special someone start reading it together now, you can wrap it up just in time for Valentine’s Day! You’ll find it under “Topical” in the Bible App’s Plans, or at http://www.youversion.com/reading-plans/love-and-marriage.

YouVersion
would like to thank Biblica and Zondervan for making the NIV available
offline. You can learn more about both of these organizations at their
web addresses below.


God has already done so much in 2011. We’re looking forward to seeing where
---


He takes us as we continue to celebrate and share His Word.


Sincerely,
Your Friends at You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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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요약하면 KJV 400주년 기념으로 NIV 성경을 짧은 시간동안만 공짜로 나눠준다는 겁니다.
KJV 성경이던 NIV 성경이던 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많은 크리스천들은 좋아할만한 뉴스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답답하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KJV 와 NIV 성경이 왜 구별되는지,
왜 KJV 가 400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읽히는지,
왜 NIV는 YouVersion 이라는 회사가 KJV 처럼 애초부터 공짜로 나눠주지 못하는지..
이런 등등의 질문에는 아마 생각해본적도 없을겁니다.


KJV 성경의 400 주년 기념으로 NIV 성경을 나눠준다구요?

도대체 한번이라도 두 성경을 비교하며 읽어보고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역사 교과서로 이사해 온 공상과학 소설? / 김재욱



위 사진은 뗀석기(타제석기)와 간석기(마제석기)의 모습이다. 뗀석기란 돌에서 깨뜨려서 나온 형태 자체의 돌을 그대로 사냥이나 취사, 벌목 등에 활용한 것이고, 간석기란 돌을 필요한 형태에 맞게 돌도끼와 칼, 망치 등으로 갈고 제작한 도구라고 한다.

이 내용들은 인류 화석, 즉 단 한 건도 진화의 증거로 활용되지 못하고 허위나 오판으로 속속 드러난 네안데르탈인이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 크로마뇽인, 자바원인 등등 무수히 많은 화석들에 의한 허구적 상상을 바탕으로 수집된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다.

인류 화석의 오류들이 너무 많아지자 최근에는 역사 교과서에 이런 내용들이 실려서, 국사만 해도 고조선까지 오려면 반드시 이런 원시시대 인류의 생활상에 대해 배워야만 한다.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굴 속 모계사회에서 아버지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냥과 수렵 등으로 동물가죽 옷 하나씩 걸치고 날고기를 먹다가 불을 발견하고 익혀 먹으며 살아온 판에 박힌 이야기들이다.

그렇다 쳐도, 우선 협동하여 사냥을 하려면 서로 의사소통이 돼야 하고, 아무리 간단한 언어라도 그것이 통하기 위해서는 단어에 얽힌 기본 지식들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며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예 컨대 "멧돼지를 잡자"고 한다면 그 말에 멧돼지의 생김새와 포획 후 용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멧돼지가 아닌 다른 동물들에 대한 개념들이 포함돼 있으며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가 담겨야 한다. 또한 '잡자'라는 말에는 그저 잡는다는 의미 외에도 제안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함께하는 행동이 내포되어 있으며 '잡다'라는 기본형은 물론 '잡지 않다'라는 부정형을 비롯, 잡는다는 말의 다른 활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잡는 방법과 도구 등에 대한 이해와 과거의 경험 등도 포함된다. 이것이 만일 "우리 산으로 멧돼지를 잡으러 가자."고 한다면 엄청난 개념들이 그 속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초의 언어는 서서히 발달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집단에 동시에 주어져야 하고, 표기법이 아닌 언어 자체의 발명자가 없는 것이다.

간단한 뗀석기를 인류는 얼마 동안이나 사용했을까?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원 시 야만인은 그저 뾰족하거나 손에 잡을 만한 돌(뗀석기)을 70만 년 가량이나 도구로 쓰고 나서야 BC 8,000년경에 도구다운 도구(간석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받아들이고 있는데, 70만년이라고 하면 단군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를 150번 정도 해야 하는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원숭이 상태로 과일이나 따먹으며 살았다면 모를까, 사냥과 수렵을 하며 몸에 뭐라도 걸치고 간소하나마 문화를 지니고 살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 대인이 원시인이 아니라는 근거 자료는 너무나 많다. 이런 자료들은 너무 심각한 미스터리라서 무신론자들은 외계인 등의 이유를 생각하지만 성경을 믿는 이들이 볼 때는 간단하고 명백한 문제이다. 과학의 원리가 진화가 아니고 퇴화이므로 인간의 지혜도 퇴화되고 있고, 최초의 인간이 가장 지혜로웠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과 학의 진보로 현대인이 첨단 기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기술의 축적과 기록의 발달, 정보 저장과 전달 방법의 발달 때문이다. 기록문화의 발달이나 정보 저장의 확대는 발달이 아니라 퇴보를 입증하는 것이다. 점점 더 사람들은 기록과 저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900살 정도를 살던 초창기 사람들은 다양한 지식을 지녔음에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겨우 수백 년 전의 도자기인 고려청자의 제작 기법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기술로도 청자를 재현할 수 없는 것처럼, 기록과 전수의 축적을 지혜의 증가로 보아서는 안 되며, 다양한 분야가 생겨나고 지식이 증가하는 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마지막 때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단 12:4).

고작 석기를 만드는 원시인들이 라스코 동굴의 그림을?

고대인의 놀라운 지혜에 대한 많은 증거 중에서 라스코 동굴 그림은 단연 압권이다. 외계에서 떨어졌거나(?) 조작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 물건이 아닌 동굴 유적이라 빼도 박도 못할 놀라운 증거가 된다.

프랑스의 베제르 계곡에서는 선사시대의 흔적이 147곳이나 남아 있는 동굴이 25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계곡이 빙하기 말기에 석기시대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살았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의 몽티냐크 마을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에서는 벽화가 800여 점이나 발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들소, 말, 사슴, 염소 등 100여 마리의 동물들을 사냥하는 그림이다.

마 치 샤갈이나 이중섭을 떠올릴 만큼 꼼꼼한 표현과 멋진 색으로 화려하게 색이 칠해져 있는데,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낙서가 아닌 굉장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의식주 문화를 넘어선 예술에 관련된 것이므로 매우 수준 높은 문화의 발달이 있기 전에는 어려운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료와 도구에 관한 것은 물론 여러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냥꾼이 활을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연대를 훨씬 단축시키는 요소일 것이다.

미 흡하나마 미술을 전공하며 다양한 그림을 그려보고, 20여 년째 그림과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라스코 동굴의 이 그림들은 10년, 20년 연마해서 나오거나 우연히 끄적거릴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동물 등 피사체의 약화(축약)된 형태라든지 색채감, 역동적 구도, 원근감 등 매우 높은 수준의 그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도 이곳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인류는 발전한 것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 그림들의 연대는 17,000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그린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이 그림은 뭉툭한 돌을 갈아 돌도끼를 만들기도 전, 거의 만 년 전에 해당되는 원시시대이다.




이 그림들을 정말 원시인들이 그렸을까? 물론 아니다. 사람들의 충격은 미술의 역사에 대한 기존의 학설 때문에 더욱 컸다. 인류 초기에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점점 사실적인 것을 그리는 방식으로 발달했다는 것이 미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카소가 그랬듯이 모든 미술은 모방으로 시작해 사실적 묘사를 넘어가야 해체와 추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추상의 개념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그림이 아닌 어린아이나 문외한의 낙서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론에 머리를 고정시켜 놓고 거기에 다른 지식들을 꿰어 맞추다 보니, 늘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어리석은 것에서 지혜로운 것으로 나아간다고, 거꾸로 이해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순한 도구들은 누구의 흔적일까?

뗀석기와 간석기처럼 단순한 도구들과 놀라운 회화적 표현 방식의 벽화와의 상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진화론적 연대 개념으로는 도무지 풀 방법이 없다. 외계인이 와서 그리고 갔다는 식의 이야기 외에는 말이다.

이 도구들은 인류 초창기의 흔적이거나 노아의 홍수 직후, 그리고 바벨탑 분리 직후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잠시 이런 도구들을 사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농업 등 다양한 일이 생기고, 철을 제련하거나 악기를 만드는 등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 노아의 홍수 당시에도 20~30억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미시간 인디언 석판에 나오는 것처럼) 고층 건물을 짓고 살았으며 고도의 문명을 지녔으므로 대형 배를 건조할 정도의 놀라운 토목기술을 갖춘 노아 가족도 방주에 도구들을 실었을 것이고, 저렇게 단순한 도구들은 사람이 늘어나는 새로운 인류의 초창기에만 잠시 사용됐을 수 있다.

그러나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지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는 매우 급격히 분산되었고, 그나마 소통이 나은 가족 단위로 뿔뿔이 황무지로 흩어졌다. 그들은 일부 정착하고 나머지는 지속적으로 이동하여 전 대륙을 채웠다. 그러는 동안 철을 제련하거나 복잡한 도구를 만들기보다 임시 방편으로 간단한 도구들을 만들어 썼을 것이다. 그런 흔적들이 바로 이런 단순한 석기들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편 뗀석기들에는 무언가에 이용한 흔적도 남았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냥 돌일 수도 있다고 본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처럼 황당함 속에서 용감하게 상식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잘 모르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한 포털에 있는, 어떤 학생의 질문이 흥미롭다.

"옛날에 뗀석기와 간석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책에서 보니까 그냥 돌과 비슷하게 생긴 것두 있더라고요... 혹 그냥 돌을 뗀석기와 간석기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을 보면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기존의 지식을 바꾸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에 억지로 끼워 넣거나 미스터리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므로 미술의 거장이라는 피카소도 그리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역시 진화론적 철학의 희생자이다.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라스코 동굴의 그림들에 대해 "인류는 발전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석기시대는 없었다."고 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