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과연 마귀에게만 속는 것일까?

성경에는 성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육" 이라는 표현이죠.

또 다른 말로는 "옛 사람" 이라고도 합니다.

관점에 따라 이 둘을 또 엄밀하게 나눌 수도 있지만 일단 공통적인 면을 두고 같은 용어처럼 쓰겠습니다.


갓 거듭난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용어는 익숙치 않을수 있습니다.

성경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이런 단어들이 성경에 나와있는걸 확인하고,

또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좀 알고나서야 익숙해지는 거니까요.


"옛 사람" 혹은 죄성을 가진 "육"은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새로 거듭난 성도들에게 "옛 사람"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죄성을 가진 "육"은 날마다 죽어야 할 대상이 됩니다.

또한 "옛 사람" 혹은 "육"의 권세에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해방되었지만,

속박되었을때의 옛 기억과 습관,

혹은 "옛 사람"이 여전히 미치고 있는 강한 영향력은 평생동안의 문제가 됩니다.




예전에 독일의 한 고(古)성에 가본적이 있는데 그 고성의 지하에는 죄수들을 가두던 감옥이 있었습니다.

그 감옥 벽에는 아주 두꺼운 쇠사슬이 달려 있었고 그 쇠사슬의 끝에는 죄수들의 손과 발목을 채우던 수갑도 달려있었습니다.

이런 수갑에 채워지면 쇠사슬의 길이 반경안에 꼼짝없이 머물러야만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은 마치 우리가 이런 쇠사슬의 수갑에 채워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성도들을 묶어둡니다.

수갑이 이미 열렸고, 마음만 먹으면 지하의 어둡고 습한 쇠사슬에서 벗어나

밝은 햇살로 나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갑에 채워진 것처럼 스스로 그 지하의 어두운 곳으로 한 걸음씩 걸어내려가는 거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옛 사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과 죄들을 반복해서 지으면서도 오해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귀에게 속았다는 표현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귀에게 속는 것이 아닌 "옛 사람"의 영향력에 취해있을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과 판단으로 우리는 밝은 햇살로 나올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같은 "옛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나 클때에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우리가 그 속박의 굴레에서 이미 벗어낫음을 기억나게 해주시고 당당히 밝은 햇살아래로 걸어나올 힘을 주십니다.



제 스스로에게 바라기는..

이런 상황이 올때마다 늘 주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더 이상 마귀에게 속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속박의 굴레속으로 버릇처럼 걸어가는 짓을 그만두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힘을 받아 당당히 자유를 누리는 생활..

늘 이런 생활이 가능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왜 살아가는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의 생활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만 가진채,

희생없는 사랑만 부여잡고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여간 초라한게 아니고,

심지어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나 하는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커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 낳은 이 아들을 잘 키우라고 하나님이 계속 삶을 허락해주시나 싶기도 하고,

계속해서 넘어 자빠지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깨어질까 두려운 마음만 커진다.


내 나이쯤 된 크리스찬이라면 아마 꽤 많은 수가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갈텐데,

다들 참 대단하고, 대단하다.

푸념같은 글이 2년 만에 쓰는 글이라니, 글쓰기에 꽤 많이 소홀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