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7일 수요일

뉘우침과 사랑


사람을 평가할때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할수 있겠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애절하게 보여지는 순간 누구나 그 사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게 됩니다.

특히 부모의 내리사랑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심지어 끔찍한 살인을 할 살인자라도

감옥의 창살에 갇혀 지난날을 뉘우치며 늙은 부모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되지요.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던 청년이 치기어렸던 젊은 시절의 잘못들을 뉘우치며 부모님께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과 따뜻한 시선을 갖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을 용서하고, 자식들에게는 어떤 잘못을 해도 돌아갈 버팀목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효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문화가 있어왔습니다.

이런 긴 문화의 영향인지 몰라도, 적어도 부모와 자식간에 보여지는 이런 사랑의 모습 앞에서는

누구나 얼음같은 차가운 감정들이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비단 효를 숭상하는 문화때문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오랜시간 독일에서 살면서 이곳 사람들도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 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뉘우치고 돌아서서 부모에게 용서를 빌때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바라볼때 누구도 그것에 대해 공의를 먼저 내세우지 못할것입니다.

못난 자식의 잘못에 댓가를 치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죽음에 까지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눈에 띄게 늘어난 부모님의 주름과, 인생의 고된 여정에서 단단하게 박힌 굳은살을 보며

눈가의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어느 못난 자식의 모습에서,


머리에 깊숙히 박혀 피가 쏟아지는 가시 면류관과 양 손을 뚫고 십자가에 박혀있는 굵은 대 못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눈물로 회개하는 이 못난 저의 모습에서...


이건 그저 부모가 베푸는 사랑이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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