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목요일

모세의 빛나는 얼굴 (출34:35) / 김문수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모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말씀을 나누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34:35).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w the face of Moses, that the skin of Moses' face shone: and Moses put the vail upon his face again, until he went in to speak with him.


출애굽기 34장에는 모세가 하나님과 말하는 동안 그 얼굴의 피부가 빛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 이야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하는 설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가끔 모세의 빛나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성경의 기록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도 있습니다.

이 성경 기록의 핵심은 "하나님과 교제하면 얼굴에 빛이 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을 두려워하자 모세가 베일을 썼다", "모세는 자기 얼굴의 광채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베일을 썼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자기 얼굴을 가렸을까요? 출애굽기 34장과 함께 고린도후서 3장을 대조하면서 이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백성들이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두려워하여

소 설이나 영화에서는 도둑이나 자객이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해 복면을 쓰기도 하고, 천하절색의 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베일을 쓰기도 하고, 얼굴이 보기 흉한 사람이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기 위해 면사로 얼굴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얼굴을 가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당시 용모가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고, 감추어야할만한 흠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항상 백성들과 대면하여 소통을 해야 하는 지도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얼굴을 가린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을 보면 그런 추론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보니, 보라, 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므로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였더라(출34:30)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고후3:7)

성 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세가 베일을 써야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조폭의 흉악한 얼굴이 무서우면 멀리 도망을 치거나 경찰과 동행해야지, 그가 복면을 쓴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베일을 쓰거나 벗거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모세일 뿐입니다. 성경은 백성들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고 기록할 뿐, 모세가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을 가렸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즉 모세가 쓴 베일은 백성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처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 모세가 사라져가는 영광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두 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모세가 자기 얼굴의 광채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백성들이 볼까봐" 두려워해서였다는 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빛이 나게 되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그 자랑스러운 영광을 한껏 과시하고 싶었는데 그 빛이 점점 사라져가자 자기의 그런 모습을 백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베일로 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누가 제일 처음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Q.T.나 명상 등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깊이 교제할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적인 수행을 통해서 영성을 계발할 수 있다고 하는 은사주의자들,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경적 근거로 고린도후서 3장 7절을 제시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성경적 근거가 아니라, NIV적 근거라고 해야 합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영광인가, 없어질 영광인가?

NIV: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고후3:7)

NKJV: But if the ministry of death, written and engraved o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passing away,

흠정역: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KJV: But if the ministration of death, written and engraven i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behold the face of Moses for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to be done away:

현 대역본들 중에서 NIV, NASB, NKJV 등은 "was fading", "was passing away" 라는 과거진행형 표현을 사용하여 모세의 얼굴에 있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것을 "없어질 (was to be done away) 영광"이라고 했지 그 영광이 점차로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진행형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지만 그것은 곧 없어질 영광이었고, 잠시 후에는 사라진 것이 되었습니다(고후3:13).

그러므로 모세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영광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도자로서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기 얼굴에서 그 영광이 사라져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적합한 해석이 아닙니다. 영성 훈련 지도자들은 종종 하나님과의 교제의 유익한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야광 물체를 빛에 쪼였다가 어두운 곳에 가져가면 빛을 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이 희미해진다. 휴대폰 배터리도 쓰다보면 전기를 소모하여 다시 충전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도 영성 운동을 통해서 계속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소멸되거나 닳아 없어지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백성들이 영원하지 못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세 번째 견해는,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하지 못한 것에 주목하지 말고, 영원한 것에 관심을 두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3장 13절과 출애굽기 34장 32, 35절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개역: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후3:13)

한글킹: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없어질 것의 종말을 지켜 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리는 것같이는 아니하노라.

흠정역: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 같이 하지 아니하노라.

KJV: And not as Moses, which put a vail over his face,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look to the end of that which is abolished:

고 린도후서 3장 13절에서 한글킹제임스역은 개역의 번역을 따라 "없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which is abolished"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동 완료형"입니다. 따라서 "없어질 것"이 아니라, 흠정역과 같이 "사라진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도록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여기에서 "사라진 것"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잠깐 있다가 없어진 그 광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모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말씀을 나누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34:35).

그 뒤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므로 그가 주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으로 주니라(출34:32).

오 늘날 한국 교회의 부흥사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은 교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자기의 존재감과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중에서 금가루가 떨어진다거나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할 수만 있다면 대규모 집회를 열어서 말씀은 뒷전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그 빛나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아왔을 때, 그들은 그로부터 두 가지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얼굴에서 밝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광채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눈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는 차단해버리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청각 정보만 남겨두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 보이다가 없어질 영광을 보지 말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원했습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눈에 보이는 신비주의적 체험을 쫓아다니지 말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후5:7)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고후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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