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0일 목요일

역사 교과서로 이사해 온 공상과학 소설? / 김재욱



위 사진은 뗀석기(타제석기)와 간석기(마제석기)의 모습이다. 뗀석기란 돌에서 깨뜨려서 나온 형태 자체의 돌을 그대로 사냥이나 취사, 벌목 등에 활용한 것이고, 간석기란 돌을 필요한 형태에 맞게 돌도끼와 칼, 망치 등으로 갈고 제작한 도구라고 한다.

이 내용들은 인류 화석, 즉 단 한 건도 진화의 증거로 활용되지 못하고 허위나 오판으로 속속 드러난 네안데르탈인이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 크로마뇽인, 자바원인 등등 무수히 많은 화석들에 의한 허구적 상상을 바탕으로 수집된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다.

인류 화석의 오류들이 너무 많아지자 최근에는 역사 교과서에 이런 내용들이 실려서, 국사만 해도 고조선까지 오려면 반드시 이런 원시시대 인류의 생활상에 대해 배워야만 한다.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굴 속 모계사회에서 아버지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냥과 수렵 등으로 동물가죽 옷 하나씩 걸치고 날고기를 먹다가 불을 발견하고 익혀 먹으며 살아온 판에 박힌 이야기들이다.

그렇다 쳐도, 우선 협동하여 사냥을 하려면 서로 의사소통이 돼야 하고, 아무리 간단한 언어라도 그것이 통하기 위해서는 단어에 얽힌 기본 지식들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며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예 컨대 "멧돼지를 잡자"고 한다면 그 말에 멧돼지의 생김새와 포획 후 용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멧돼지가 아닌 다른 동물들에 대한 개념들이 포함돼 있으며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가 담겨야 한다. 또한 '잡자'라는 말에는 그저 잡는다는 의미 외에도 제안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함께하는 행동이 내포되어 있으며 '잡다'라는 기본형은 물론 '잡지 않다'라는 부정형을 비롯, 잡는다는 말의 다른 활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잡는 방법과 도구 등에 대한 이해와 과거의 경험 등도 포함된다. 이것이 만일 "우리 산으로 멧돼지를 잡으러 가자."고 한다면 엄청난 개념들이 그 속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초의 언어는 서서히 발달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집단에 동시에 주어져야 하고, 표기법이 아닌 언어 자체의 발명자가 없는 것이다.

간단한 뗀석기를 인류는 얼마 동안이나 사용했을까?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원 시 야만인은 그저 뾰족하거나 손에 잡을 만한 돌(뗀석기)을 70만 년 가량이나 도구로 쓰고 나서야 BC 8,000년경에 도구다운 도구(간석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받아들이고 있는데, 70만년이라고 하면 단군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를 150번 정도 해야 하는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원숭이 상태로 과일이나 따먹으며 살았다면 모를까, 사냥과 수렵을 하며 몸에 뭐라도 걸치고 간소하나마 문화를 지니고 살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 대인이 원시인이 아니라는 근거 자료는 너무나 많다. 이런 자료들은 너무 심각한 미스터리라서 무신론자들은 외계인 등의 이유를 생각하지만 성경을 믿는 이들이 볼 때는 간단하고 명백한 문제이다. 과학의 원리가 진화가 아니고 퇴화이므로 인간의 지혜도 퇴화되고 있고, 최초의 인간이 가장 지혜로웠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과 학의 진보로 현대인이 첨단 기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기술의 축적과 기록의 발달, 정보 저장과 전달 방법의 발달 때문이다. 기록문화의 발달이나 정보 저장의 확대는 발달이 아니라 퇴보를 입증하는 것이다. 점점 더 사람들은 기록과 저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900살 정도를 살던 초창기 사람들은 다양한 지식을 지녔음에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겨우 수백 년 전의 도자기인 고려청자의 제작 기법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기술로도 청자를 재현할 수 없는 것처럼, 기록과 전수의 축적을 지혜의 증가로 보아서는 안 되며, 다양한 분야가 생겨나고 지식이 증가하는 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마지막 때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단 12:4).

고작 석기를 만드는 원시인들이 라스코 동굴의 그림을?

고대인의 놀라운 지혜에 대한 많은 증거 중에서 라스코 동굴 그림은 단연 압권이다. 외계에서 떨어졌거나(?) 조작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 물건이 아닌 동굴 유적이라 빼도 박도 못할 놀라운 증거가 된다.

프랑스의 베제르 계곡에서는 선사시대의 흔적이 147곳이나 남아 있는 동굴이 25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계곡이 빙하기 말기에 석기시대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살았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의 몽티냐크 마을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에서는 벽화가 800여 점이나 발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들소, 말, 사슴, 염소 등 100여 마리의 동물들을 사냥하는 그림이다.

마 치 샤갈이나 이중섭을 떠올릴 만큼 꼼꼼한 표현과 멋진 색으로 화려하게 색이 칠해져 있는데,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낙서가 아닌 굉장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의식주 문화를 넘어선 예술에 관련된 것이므로 매우 수준 높은 문화의 발달이 있기 전에는 어려운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료와 도구에 관한 것은 물론 여러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냥꾼이 활을 사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연대를 훨씬 단축시키는 요소일 것이다.

미 흡하나마 미술을 전공하며 다양한 그림을 그려보고, 20여 년째 그림과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라스코 동굴의 이 그림들은 10년, 20년 연마해서 나오거나 우연히 끄적거릴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동물 등 피사체의 약화(축약)된 형태라든지 색채감, 역동적 구도, 원근감 등 매우 높은 수준의 그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도 이곳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인류는 발전한 것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 그림들의 연대는 17,000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그린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이 그림은 뭉툭한 돌을 갈아 돌도끼를 만들기도 전, 거의 만 년 전에 해당되는 원시시대이다.




이 그림들을 정말 원시인들이 그렸을까? 물론 아니다. 사람들의 충격은 미술의 역사에 대한 기존의 학설 때문에 더욱 컸다. 인류 초기에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점점 사실적인 것을 그리는 방식으로 발달했다는 것이 미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카소가 그랬듯이 모든 미술은 모방으로 시작해 사실적 묘사를 넘어가야 해체와 추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추상의 개념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그림이 아닌 어린아이나 문외한의 낙서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론에 머리를 고정시켜 놓고 거기에 다른 지식들을 꿰어 맞추다 보니, 늘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어리석은 것에서 지혜로운 것으로 나아간다고, 거꾸로 이해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순한 도구들은 누구의 흔적일까?

뗀석기와 간석기처럼 단순한 도구들과 놀라운 회화적 표현 방식의 벽화와의 상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진화론적 연대 개념으로는 도무지 풀 방법이 없다. 외계인이 와서 그리고 갔다는 식의 이야기 외에는 말이다.

이 도구들은 인류 초창기의 흔적이거나 노아의 홍수 직후, 그리고 바벨탑 분리 직후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잠시 이런 도구들을 사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농업 등 다양한 일이 생기고, 철을 제련하거나 악기를 만드는 등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 노아의 홍수 당시에도 20~30억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미시간 인디언 석판에 나오는 것처럼) 고층 건물을 짓고 살았으며 고도의 문명을 지녔으므로 대형 배를 건조할 정도의 놀라운 토목기술을 갖춘 노아 가족도 방주에 도구들을 실었을 것이고, 저렇게 단순한 도구들은 사람이 늘어나는 새로운 인류의 초창기에만 잠시 사용됐을 수 있다.

그러나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지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는 매우 급격히 분산되었고, 그나마 소통이 나은 가족 단위로 뿔뿔이 황무지로 흩어졌다. 그들은 일부 정착하고 나머지는 지속적으로 이동하여 전 대륙을 채웠다. 그러는 동안 철을 제련하거나 복잡한 도구를 만들기보다 임시 방편으로 간단한 도구들을 만들어 썼을 것이다. 그런 흔적들이 바로 이런 단순한 석기들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편 뗀석기들에는 무언가에 이용한 흔적도 남았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냥 돌일 수도 있다고 본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처럼 황당함 속에서 용감하게 상식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잘 모르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한 포털에 있는, 어떤 학생의 질문이 흥미롭다.

"옛날에 뗀석기와 간석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책에서 보니까 그냥 돌과 비슷하게 생긴 것두 있더라고요... 혹 그냥 돌을 뗀석기와 간석기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을 보면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기존의 지식을 바꾸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에 억지로 끼워 넣거나 미스터리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므로 미술의 거장이라는 피카소도 그리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역시 진화론적 철학의 희생자이다.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라스코 동굴의 그림들에 대해 "인류는 발전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석기시대는 없었다."고 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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