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즐겨보는 한 블로그에서 '희떱다' 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옹골지다' 라는 단어의 반대말쯤 되는 말이란다.
겉으로는 화려하면서도 속은 텅 빈 것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블로거는 이 단어를 소개하면서 이런 비판을 한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을 묘사할 단어로 제격이다. 이들은 글을 써도 ‘희떠운’ 용어나 추상어들을 주욱 나열하는 게 잘 쓰는 글인 줄로 착각한다. 어느 이슈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써도 결국에 가서는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헤지’(주: 헤지(hedge)는 울타리, 장벽, 방지책이란 뜻이 있다)한다. 이 또한 희떱다. 그렇다면, 소위 ‘논객’이라는 인간들은 낫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파티즌(partisan)’이다. 이들의 논리 또한 희떱다. 남 욕을 잘하지만 정작 내놓는 것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주절거리는 소리에 자주 노출되면 지적 인슐린 저항에 빠지기 십상이다. 일단은 배가 찬 듯한데 금방 꺼진다. 그 후에는 더 강한 뭔가를 원하게 된다. 악순환이고 중독이다'
이 블로거는 소위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과 일반인들의 상식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가 있는 점을 문제로 들면서 또 이런 말을 한다.
'대학에 가고 대학원에 가서 특정 분야에 대한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사람은 의무교육만 받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 돌아가는 것을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내가 왜 이런 내용의 글을 인용하느냐면 이 블로거의 생각에서 이번에 글을 쓸 주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적인 부분에는 과연 전문가 혹은 지식인이 있는가? 있다면 영적인 일반인의 상식과 영적인 전문가의 지식 사이에 얼마만 한 괴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크리스천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12월의 끝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우리 교회의 회지인 '젊은 청지기들'에 올릴 글에 대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위에 인용한 글을 읽고서는 이렇게 영적인 부분에 빗대어 생각하게 된다.
영적인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혹은 '였던' 사람이 누가 있던가?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나님이기도 하시지만 또한 완전한 사람이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먼저 어떻게 영적인 지식을 우리에게
설명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하면 수많은 비유가 먼저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대부분의 사람은 깊은 학문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수많은 비유가 그렇게 쉬운 비유들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을 좀 더 살펴보면 그 쉬운 (비유를 통한) 말씀의 이유가 듣는이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다.
대표적인 영적 지식인이었던 바리새인들을 앞에 두고도 예수님은 소위 말하는 청중의 수준에 맞는 수준 높은 영적 대화를 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들이 고차원의 대화를 원했다면 아마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셨던 예수님은 아마 그들이 생각하는 고차원이란 게 얼마나 희떠운 수준인지 아주 알기쉽게 설명해주셨을지도 모르겠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는 너무 어렵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말들이란 없다.
때로는 적절한 비유로, 때로는 대놓고 하시는 직접적인 말씀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래서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누구나 영적인 일들을 쉽게 알 수 있게 하셨고 그래서 그토록 많은 무리가 주님을 쫓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이 전한 영적인 지혜들이 그렇다면 원래 너무 쉬웠던 것이었을까. 원래 쉬운 주제여서 쉽게 전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어리석은 자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어리석어 무시해도 될것처럼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깊이깊이 깃들여있다.
다 만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지나면서 처음에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진 그 복음에, 소위 영적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심 오하고 어렵다는 철학과 과학, 그리고 자신의 얕고 얕은 경험적 지식을 덧씌워 치장하다가
결국 기독교의 진리가 굉장히 어려운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려해도, 그 진리의 복음의 핵심을 먼저 전하기보다는,
적절한 대화술과 상대방의 거부감을 줄이기위한 심리학적인 도구들과 화려한 추상적 미사여구를 먼저 생각하느라고
복음은 어느새 한쪽 귀퉁이에 몰려 들리는듯 마는 듯 언급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다만 복음으로 거듭나 영원한 생명을 주는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서 저마다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영적인 지식,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으로 자라나게 되는데 이때에도 소위 영적인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방해받을때가 있다.
참 단순하고 쉬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하면 될 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다보면 온갖 이유와 핑계와 그럴듯한 논리등이 등장하게 마련이고 이런 온갖 것들을 말했던 (소위 권위있다는) 선생들이 주변에 쌓여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일부 영적인 전문가들은 권위있는 선생들의 그 높아보이는 위상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런류의 핑계들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선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전문가라면 정말 옹골진 전문가답게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알기쉽게 진리를 전해야 할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라면 아기답게 철학같은 어두운 골짜기에서 찾아낸 핑계들을 선생으로 쌓아놓는데 급급하지 말고 오직 말씀에 대한 단순한 '순종'으로 아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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