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할때 풀리는 문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크리스천에게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의외로 답이 쉬운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배 시에 어느 정도까지의 음악이 적절한가?

가끔씩 담배는 피워도 상관없지 않나?

적당히 술을 마시는 건 어떤가?

등등의 문제들을 고민할 때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사실 그 답은 쉽게 나옵니다. 다만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 “시대의 상식”에 맞는 옳고 그름의 입장에 서면 답이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해야  할 이웃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나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할 것 같고 그러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관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적절함은 때로 경계선 가까이에 있는 “악”을 “선”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옛 사람 안에 있는 “적절하다”는 기준이 점점 모든 신앙행위의 기준으로 자리잡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친구처럼 친근하게만 느껴지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점점 더 “적절한 관용”과 스스로 정의하는  “사랑”의 마음이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알려지지 않은 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도, 그저 매우 특별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준이기에 결국 자신의 생각이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됩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렇지만  철자하나 다르지 않는 같은 단어로 사용되면서 그 구분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 어느새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될  때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과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의 차이를 구분 지어보면 아마 커다란 차이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그렇게 자주 나오는 “사랑"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이유로 이렇게 저렇게 행했던 많은 것들이 회개할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
하나님이 가르쳐준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 하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옛 사람이 가진  버릇 위에 세우는 일이야 말로 가장 서둘러야 할 우선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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