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누가 누구에게 물었을까요?/김문수

아래의 글은 김문수  형제님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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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물었을까요? (스 5:4)


(스 5:4, 개역)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스 5:4, 킹흠정) 그때에 우리가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 건물을 짓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라.

(Ezr 5:4, NIV) They also asked, "What  are the names of the men constructing this building?"

(스 5:4, KJV) Then said we unto them after this manner, What are the names of the men that make this  building?


바빌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있을 때, 강 이 편을 관할하는 총독과
그  동료들이 찾아와서 "누가 너희에게 이 집을 건축하고 성벽을 보수하게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스 5:3, 킹흠정) 바로 그때에 강 이편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나아와 그들에게
이같이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집을 건축하고 이 성벽을 보수하게 하였느냐? 하기에

그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답변이 에스라 5:4에 나옵니다. 그런데 NIV에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물었다"고
번역 하였고, 킹제임스성경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말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두 번역에서는
주어와 목적어가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개역은 문맥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가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번역들을 조금 더 찾아보면, 번역의 방향은 세 갈래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새번역, 우리말성경, 가톨릭성경, 쉬운성경, 현대인의성경, 현대어성경, NIV, NLT, NRSV, GNT 등은  모두
에스라 5:4에서, 그들(총독과 그 동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문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개역, 개역개정, 바른성경, NASB, NKJV, MSG 역에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건축하는 자들의 명단을 알려
주 었다"고 번역합니다.

(3) KJV, 킹제임스흠정역, 한글킹제임스역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이 건물을 짓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 이냐?"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제일 말이 안 되는 것이 킹제임스성경인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총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가  너희에게 이 집을 건축하라고 했느냐?"라고 물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 건물을 짓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오히려 되묻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잘 알고 있고, 총독은 그들에게 조사하러 나온 것인데,
이처럼 반문을 하니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머리로 잘 이해가 안되는 성경 말씀은 자기들
마음대로 고쳤습니다.

이렇게 NIV를 비롯하여 주어와 목적어가 바뀐 번역본들은 70인역을 본문으로 삼고 있는 역본들입니다.
70인역이라 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추가하고, 삭제하고, 훼손한 오리겐의 헥사플라 5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오리겐의  옛 말씀", OOO(Old Origen's Oracles)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의 번역을 따를 경우, 총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가 너희에게 이 집을 건축하라고 했느냐?"라고
묻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이 건물을 짓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연이어 질문만 하고는 그냥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총독이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여 쌓는 것은 총독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바빌론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치 구역을 만드는 행위로서 반역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스 4:16, 킹흠정) 우리가 왕께 알리오니 이 도시가 다시 건축되고 그것의  성벽이 세워지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왕께서는  강 이편에서 아무 몫도 소유하지 못하시리이다, 하였더라.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제보를 받은 총독으로서는 절대로 그 일을 묵과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지시로 그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만약 그들의 건축 작업이 정당한 법적 근거가 없다면 당장 중지시키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기세등등하게 찾아온 총독이 질문만 두 번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답변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물러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총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답변을 듣고 자기의 권력으로는 이번 공사를  중지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나 봅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 중대한 사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 속에  들어있을 겁니다. 따라서, (1)번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 내용을 삭제해버린 변개된 역본들의 번역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개역과 NKJV 등은 적당한 선에서 의역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어와 목적어는 그대로
두 고, (그들의 생각에) 의미가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건축하는 자들의 명단을 알려주었다"고
번역한 것입니다.

에스라 5장 3절과 4절을 연결시키기에는 이런 식의 의역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에스라 5장
전체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일은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이 고소를 하여  아닥사스다왕의 명령으로 인해 에스라 4장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대언자들의 말을 듣고 에스라 5장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총독과 그 동료들이
또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의 부추김을  받아 공사를 중단시키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축하는 자들의 명단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면, 당장 그  공사를 주도하는
지도자들을 잡아가두고, 백성들이 건축하는 일을 못하게 막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서는 공사를 중단시키러 온 본래의 목적도 잊은 채
페르시아 왕궁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고 한 적이 있는지"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스 5:17),
회신이 오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관할 지역 내에서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총독들이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졌을까요?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길래 공사를
중단시키지 못하고, 왕궁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어본 것은, "이 일을 누가 명령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스 5:3, 킹흠정) 바로 그때에 강 이편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나아와 그들에게 이같이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집을 건축하고 이 성벽을 보수하게  하였느냐? 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은 총독이 왕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나 있습니다. 편지 속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  내용은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게 하였고, 고레스 왕이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
왕명을 받들어  하나님의 집의 기초를 놓았고, 우리는 지금까지 그 집을 건축해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스 5:13, 킹흠정) 그러나 바빌론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그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하나님의 이 집을 건축하게 하고
(스   5:16, 킹흠정) 이에 그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의 기초를 놓았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 집을 건축하여 왔으나 아직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우리는 에스라 5:13-16에 있는 총독의 편지 내용을 통해서 에스라 5:4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답변한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독과 그 동료들에게 "이 건물을 짓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닙니다. 건축하고 있는 자들의 이름은 자기네들이 더 잘 알텐데 그걸 왜 총독에게 묻습니까? 또한 지금은 총독이  묻는 말에 답을 해야 할 입장인데 왜 도리어 질문을 하겠습니까?
누구의 지시로 이 공사를 하느냐는 총독의 질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스바살과 고레스를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총독에게 "이 이름들(세스바살과 고레스)이 무엇이냐?"라고 되물은  겁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단순한 의문의 표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와 무게와 가치를 지닌  것인지"를 묻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곱이 요셉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이미 다 들었는데, 왜  "이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까요? 그 꿈의 의미가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요셉에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꾸짖는  겁니다.

(창 37:10, 킹흠정) 그가 그 꿈을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고하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이 꿈이 도대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하니라.

산발랏과 도비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쌓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까? "너희가 하는 일의 의미는 왕을 배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느 2:19, 킹흠정) 그러나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족속인 종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그 말을 듣고는 우리를 조롱하여 비웃고 업신여기며 이르되, 너희가 행하는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에

나발이 정말 다윗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다윗이 누구냐?"라고 물었을까요? 나발은 "다윗이 뭔데? 난 다윗이 누군지  모른다. 나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삼상 25:10, 킹흠정)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각각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들이  많도다.

누군가가 "당신이 누군데? 네까짓 게 뭔데?"라고 하면, 상대방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질문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신분", "의미", "권위"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독 앞에서 지금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뒤에는 총독 세스바살이 있고, 그 배후에는 고레스 왕이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 세스바살 총독, 고레스 왕인데, "이 이름들(세스바살과 고레스)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겁니다. 총독 당신은 이 이름들의 권위를 인정하느냐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앞에서 "세스바살은 무엇이고 고레스는 무엇이오? 우리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명령을 내려서 그대로 하고 있을 뿐이오." 라고 답하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건축하는 일을  중단시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급히 왕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게 정말 고레스 왕의 명령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에스라 5:4 말씀이 얼핏 읽기에 이상해 보인다고 해서 주어와 목적어를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문맥이 어색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의역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의역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본래 의미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있는 그대로 믿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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