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인가?

아래의 글은 김문수 형제님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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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인가?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흠정역: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한글킹: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NIV: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KJV: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북정가 (北征歌)
남이 (南 怡)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이요,)
頭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라.)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이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리요?)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앤다.
남아가 이십세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

위에서 소개한 시는 남이 장군의 북정가입니다. 이 시에는 사내대장부의 기개와 자신의 젊음과 충성을 다 바쳐서 이 나라를  평온하게 하겠다는 그의 결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은 그의 충성심과 공로를 시기하여 그가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씌워서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남이 장군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한 일이라고는 딱 한 가지, 저 시에서 글자 하나를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3행에 나오는 "未平國(나라를 평온케 못하면)"을 "未得國(나라를 얻지 못하면)"이라고 변개하여 그를  역적으로 몰았습니다.

오늘날 마귀가 거짓 교리들을 만들어내어 성도들을 공격하고, 성도들의 믿음에 혼란을 일으키는 방법도 이와 꼭같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단어 몇 개를 삭제 혹은 추가하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치기하여 그 말씀의 내용을 전혀 엉뚱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아주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 하시더냐?"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면 부정하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리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에 대하여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지 못한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라고 변개하였고,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라는 내용을 임의로 추가하였으며,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견고하게 붙들지 못한 그녀는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진리의 말씀을 변개하고, 올바른 믿음의 교리를 뒤흔들어 놓는 마귀의 공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귀의 공격은 참으로 교묘하여 성도들이 말씀에 자세히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결코 자기가 변개한 성경 말씀에 "사탄을 숭배하라."라는 내용과 같이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리고, 그의  속셈이 쉽게 발각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쉽게 표가 나지  않도록, 아주 작은 단어 한 개, 전치사나 부사 하나, 철자 한 자 정도를 바꾸어 버립니다. 그런데 비록 한 두 단어라고 할지라도  마귀가 변개해 놓은 구절들은 대부분 아주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흠없이  보존해주신 킹제임스성경을 자세히 주의하여 꼼꼼하게 읽어야 하며, 우리가 믿는 교리나 행동 규범의 기준, 판단 기준은 모두 이  말씀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며칠 전, 본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 갈라디아서 2:20 말씀을 인용한 글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어느 성경을  사용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번역은 잘못된 것이며, "...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가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the faith in faith in the Son of God)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the faith of the Son of God),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the faith in  Jesus Christ)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Jesus Christ)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것이 정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있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NIV와 NASB와 같은 현대 역본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Jesus Christ)"이라는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이 표현은 오직 킹제임스성경에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전치사 of 의 번역 문제

faith of Jesus Christ 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기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왜냐하면 전치사 of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love of God 라고 할 때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문맥에 따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 홈페이지에는 "love of golf"라는 표현을 예로 들면서 이것은 "골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없고  "골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해야 하므로,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표현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교묘한 말 장난에 속지  않습니다. 그 분은 자기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예를 들고 있는데, 약간만 주의하면 이런 주장이 왜 타당하지  않은지 금방 발견할 수 있습니다. love of 다음에 골프와 같은 무생물이 오면, 무생물은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그 분의  말씀처럼 "골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프와 같은 무생물입니까? 예수님은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체이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고, 믿음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같은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명히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삭제하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꿔치기 하는 자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faith of 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번역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저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다른 성경 말씀들과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faith of Jesus Christ와 faith in Jesus Christ는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 두 가지 표현을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나타낼 때에는 킹제임스성경이 faith in Jesus Christ 나 faith toward  our Lord Jesus Christ 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흠정역: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너희의 사랑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요(골 1:4),
KJV: Since w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and of the love which  ye have to all the saints,

흠정역: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행 20:21).
KJV: Testifying both to the Jews, and  also to the Greeks, repentance toward God, and faith   toward our Lord Jesus Christ.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구분하여 기록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제가 직접 성경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이라는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NIV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 역본들이 이를 "faith in"이라고 변개하였지만,  영어킹제임스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에는 이 말씀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비교를 위하여 킹제임스흠정역, KJV, 한글킹제임스역, NIV를 인용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표현에 대해 개역과 한글킹제임스역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아래 성경구절  비교에서는 개역을 별도로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1) 로마서 3:22

흠정역: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KJV: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 unto all and upon all them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한글킹: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NIV: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개역이나 한글킹제임스역은 NIV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faith in)이라고 했지만, 킹제임스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분명히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believe  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또다른 표현이 또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것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하여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표현을 따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KJV는 분명히 모든 자(unto all)와 믿는 모든 자(upon all)를 따로 구분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킹제임스역과 같이 잘못된 번역을 따를 경우,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모든 자(믿는 자  + 불신자)가 차별없이 하나님의 의를 입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교리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자기 자신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뿐, 믿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옮기는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로마서 3:22은 faith of Jesus Christ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가 모든 자에게 미치고(unto),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한다(upon)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며, 믿는 자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그 분의 은혜로 의를 입게 되므로 이 말씀은 옳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경우, 성도들  중에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가 모든 자에게 미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모든 자에게 미치고, 모든 믿는 자 위에 임하는 것이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때문입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은 내 위에 하나님의 의가 임하도록 하지만, 모든  믿는 자 위에 하나님의 의가 임하게 만들 수는 없으며, 나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 이제 이 말씀이 어떤 뜻인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하셨다면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교리를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faith of Jesus Christ라는 표현은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합니까?

(2) 갈라디아서 2:16

갈라디아서 2:16 말씀은 맨 위에 인용한 바와 같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모두 이를 faith in  으로 변개하였고, 킹제임스흠정역을 제외한 모든 한글 역본들도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KJV에는 faith of Jesus Christ 이라고 되어 있으며 흠정역에서는 이를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개역이나 한글킹제임스역은 NIV의 번역을 좇아 세 번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함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이 구절에 아주 익숙해 있는 분들은 이게 비문(非文)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선교단체에  있을 때 주제별 성경암송을 하면서 이런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을 외우느라 무척 고생했습니다. 개역의 번역을 따르자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A 때문이다. 나는 A 때문에 A한다."라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즉 내가 A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내가 취하는 것  자체가 A가 되어 버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로마서 3:22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셨다면, 이 갈라디아서 2:16 말씀도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3:22 말씀에 의하면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upon all them that believe) 하나님의 의가 임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by the faith of Jesus  Christ)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를 믿어야(believe in Jesus Christ) 합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서  2:16에서 성도들의 믿음(believe in Jesus Christ)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Jesus  Christ)을 따로 표기해 두셨습니다. 마귀는 이 모든 것을 뒤섞어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성경에서 제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있다고 하시면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3) 갈라디아서 2:20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KJV: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한글킹: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NIV: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다른 역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faith in the Son of  God)이라고 하지만,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faith of the Son of God)이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그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자기 믿음으로"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살겠습니까?

문맥으로 보아도, faith of 라는 표현으로 보아도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 갈라디아서 3:22

흠정역: 그러나 성경 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주려 하심이라.

KJV: But the script-xure hath concluded all under sin, that the  promise by faith of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em that believe.

한글킹: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죄 아래 있다고 단정하였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려는 것이라.

NIV: But the Script-xure declares that the whole world is a  prisoner of sin, so that what was promised, being given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갈라디아서 3:22에서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believe 라고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faith of Jesus Christ 라고 분명히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동일한 것이라면 faith  in Jesus Christ 라고 기록하지, 구태여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별다른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사도 바울이 faith in 에 해당하는 표현을 몰랐을까요? 아니면 그가 갈라디아서에서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faith  of Jesus Christ라고 쓰기로 작정한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도 faith in과 faith of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증거가 되는 구절이 동일한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옵니다.

흠정역: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갈 3:26)
KJV: For ye are all the children of God by faith in Christ Jesus.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26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분명하게 faith in Christ  Jesus 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갈라디아서 3:22에서는 26절과는 달리 faith of Jesus Christ 라고 한  것은 이것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22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5) 빌립보서 3:9

흠정역: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KJV: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한글킹: 또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니, 나의 의는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 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니, 곧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의라.

NIV: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빌립보서 3:9에는 faith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앞에서는 through the faith of Christ  라고 했고, 뒤에서는 by faith 라고 했습니다. 앞 부분은 그리스도의 믿음이고, 뒷 부분은 사도 바울(우리 자신)의  믿음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의"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에 의하여" 의가 온다고 되어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하게  된다고 했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의가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최종적인 결과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하시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힘입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조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저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6) 야고보서 2:1

흠정역: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KJV: My brethren, have not the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Lord of glory, with respect of persons.

한글킹: 나의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사람들의 외모로 취하지 말라.

NIV: My brothers, as believers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don't show favoritism.

야고보서 2:1 말씀을 개역과 NIV는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으니"라고 번역하여,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마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자질 때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내용, 즉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마 22:16),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마 22:39,40)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용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믿고 행하셨던 바입니다. 말하자면, 야고보서 2:1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더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글킹제임스역은 여기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으나,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영 이상한 번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에 나오는 faith of Jesus Christ 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구절들을  살펴보았고, 이것이 faith in Jesus Christ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표현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위에 열거한  구절들 중에서 로마서 3:22과 갈라디아서 2:16은 그 구절 자체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들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명백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3:22은 같은 장에 있는 2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 in)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사용하신 단어 하나 하나에는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주 간단한 전치사 of 와 in  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서 구태여 faith of Jesus Christ와 faith in Jesus Christ를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시겠다면 저로서는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사용하신 그 표현들을 있는  그대로 믿으며, 그 표현들의 의미 역시 구분하여 이해하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가르치겠습니다.

이것은 번역의 기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3. 우리의 대적은 이 말씀을 어떻게 변개하였는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 저는 먼저 상대방이 어떤 수를 두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적이 어떤  식으로, 어디를 공격하는지를 보면 적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현대 역본들이 어떤 부분을 킹제임스성경과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사탄의 술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킹제임스성경을 읽으면서 동시에 여러 역본들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변개된 역본들은 하나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 대신에,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 Christ)이라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사탄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라고  쉽게 들통날 사기를 치는 어리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삭제해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집어넣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표현이 원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는 교묘하게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나온다는 사실을 감추어 버리고,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들의  믿음이 최고인양 부추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선행, 종교, 도덕, 자기 수양 등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대신 그와 같은 율법의 행위 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 "믿음"이 선행, 종교, 도덕, 자기 수양과 비슷한 위치로  전락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내가 믿어서", "여러 종교 가운데서 내가 하나를 잘  골라서", "내 믿음대로 다 이루어진다", "믿~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믿음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져 버리고, 그 믿음의 기초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고백은 없고, 믿음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없이, 정말 "사람의 믿음"만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내가 믿어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드려서 구원의 길을 이루어 놓으셨고,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그 분께서 이루어 놓으신 공로에  참여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받는데 필요하고,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 믿음의 가치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근거는 "나의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유효할 수 있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 안에 내가 들어가게 하는 "나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우리 믿음의 근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우리로 하여금 육체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며,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완성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이 중요한 표현을 삭제하거나,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 Christ)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것으로 끝입니까? 이제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성도들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이제부터는 오직 "나의 믿음"을 가지고, "주여,  믿~씁니다"라고 고백하고 밀고 나가면 그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전 생애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시거든 물 위로 주께 오라고 내게 명하소서, 하니 그분께서, 오라,  하시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가려고 물 위로 걸어가되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가라앉기 시작하며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하시니라.(마 14:28-31)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로 오라고 명하시자, 베드로는 그 말씀을 "믿고"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주께서 명하시면  자기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바람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자 의심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놀라운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 "오직 믿음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여,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그 믿음의 주체는 사람임)을 얼마나 오랜 동안, 얼마나 견고하게, 얼마나 흠없이  지속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베드로가 자신이 소유한 주님께 대한(faith in the Lord) 훌륭한 믿음을 불과 몇  분도 유지하지 못했다면 우리 자신도 때로는 그와 같은 신앙의 위기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 위험한 때를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평온한 생활을 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대적들이 우리를 공격하여 지치게 하고, 넘쳐 흐르는  요르단 강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가 보병들과 달릴 때에 그들이 너를 지치게 하였거늘 어찌 네가 능히 말들과 겨루겠느냐? 또 네가 신뢰하던 화평의  땅에서도 그들이 너를 지치게 하였거늘 요르단이 넘치는 속에서 네가 어찌하겠느냐?(렘 12:5)

저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의심이 생길 때, 사탄이 공격해 올 때, 우리의 완전하지 못한 믿음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며, 온전케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말씀의 진리 가운데 붙들어 주고,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며, 우리 안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 하시니(눅 22:31-32)

마가복음 9:17-29 말씀에는 말 못하는 영이 들린 아들을 둔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자, 그는 즉시로 다음과 같이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곧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막 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라고 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도대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겁니까, 안  믿는다는 겁니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를 의지한 것으로 보아서 저는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고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니 자기에게는 그만한 크고 완전한 믿음이 없었다는 겁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그것들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그가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으리라(막 11:23).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 중에 마가복음 11:23 말씀과 같이 마음 속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완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가 믿지만(I believe) 자기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함을 알기에 주님께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고 자기의 믿지 않음을 도와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주께 요청한 것과 같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기는 하되 완전하지 못한 믿음으로 나아온 그의 믿음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의 아들이 완전히 고침을 받은 것으로 보아, 자기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고민하던 그  아버지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우리 주님께서 완전하고 흠없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으로 그의 믿음을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고,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육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누구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까? 내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입니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faith of the Son of God)으로 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에만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늘 믿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의인은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의롭게 될 때 뿐만아니라, 이미 믿어서 의롭게 된 이후에도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롬 8:29),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시기까지(갈 4:19),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까지(엡 3:19),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생각이 자리잡기까지(빌 2:5),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처음 주님을 믿고 따르기로 했을 때 가졌던 믿음을 의심없이,  흔들림없이, 흠없이,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흠과 실수가 많으며, 의심도  많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faith in  Jesus Christ)만으로는 도저히 온전한 믿음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망을 가져다 주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고 흠없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으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완전해지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그런 주 예수님에게는 믿음이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이라는 것은 없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분이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시라면, 그 분에게 믿음이 있으며 그 분의 믿음은 우리와는 달리 완전하고 흠없는 믿음임에 틀림없습니다. 히브리서  12:2에는 우리의 믿음이 작고, 연약하고, 불완전해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것을 완성시켜 주시는 완성자(finisher)가  되신다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책망을 듣기도 하고(눅  8:25),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라는 말씀을 듣기도 하고(마 14:31), 마음 속으로 의심하지 않는  완전한 믿음이 요구될 때도 찾아오겠지만(막 11:23), 제게는 완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 분께서  제 믿음의 완성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의 믿음"에 제 모든 것을 걸고 그것에 의지하고 있다면 이는 얼마나 위태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고 흔들림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고도 확실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내 믿음의 질적 수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때(faith in  Jesus Christ) 나의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소망이 됩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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