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아버지의 마음

교회에는 많은 다양한 분들이 옵니다.

우 선은 믿음이 없이 방문하거나,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매주 출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정상적으로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분명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들었던것  같은데, 일주일간의 삶은 보지 않아도 뻔할 정도로 멋대로 살다가도 희한하게 주일날은 교회에 와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분들도 보이고,

몇 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척 보아도 드러날 정도로 탐욕스런 눈빛을 지닌채 몇  달만에 하필이면 수련회 같은 곳에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큰 소리로 주님을 찾는 분들도 보입니다.

일 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오랜만에 한번 불쑥 찾아와서는 나름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고는 교제도 없이 휙하니  집으로 되돌아 가는 분들도 계시며, 매우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교회를 다니시던 분이 역시 조용히 교회에서 사라지는 것도  목격합니다.

게다가 어떤 분들은 서너 달에 한 번 정도씩 교회에 와서는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또 몇 달간 감감 무소식으로 교회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 분들도 계십니다.

지 난 날을 뒤돌아 보면 저 또한 이런 식(?)으로 교회를 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

몇 달간 열심히 빠지지 않고 다니다가 또  몇 달간 나가지 않거나, 한 두 해 정도 교회를 다니지 않다가 갑자기 다른 교회에 출석해서는 또 몇 달 다니다가 다니지  않고... 갑자기 아무 교회에 불쑥 한 번 가서는 예배를 드린 다음에 사람들과 교제하기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곧바로 집에오는  등등...

그 때를 생각해보면 결국 제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 경을 통해 알수 있는 바른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내 머리속 그 하나님의 모습이 전부인양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었던 모습이었던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평소 사는 모습을 엿볼수록 역시나 내  사는 모습이 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확신했었고
그래서 그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더 속으로는 떳떳했던것 같습니다.

지 금 되돌아보면, 예수님 덕분에 다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다시 허락해 주신 시간들과 여러가지 여건들을
또 다시  거듭나기전의 내것처럼 허비했던 무지하고 부끄러운 시간들입니다.

어쨋거나 그렇게 간신히 돌아선 그 마음들이  가끔씩이나마 저를 교회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 교회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때의 참담했던 심정의 저보다 더 나을것 없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뻔하고 힘없는 설교에 실망하거나, 도무지 이런식의 예배로는 허망한 마음 한구석이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되돌아  왔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가 이런 시간들을 경험했기때문에,
또 다시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때에 더 다가가서  바르게 하나님을 알려주는것이 옳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그 때의 제 마음을 또한 기억하기때문에 아무도 한 두 마디 말로 그  단단한 마음을 깨뜨릴수는 없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그 끝을 경험하거나 스스로 그  참람한 상황들을 좀 더 확실히 깨달을때에야 그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되돌려지는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곁에서 한마디 하는게 오히려 반발심을 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고, 결국 누구도 도와줄 수 없으니 그냥 두는것이  돕는것이라는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무관심이 돕는것이고 그저 잊지 않고 기도로 돕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성경말씀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이르되,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내 아버지께 가서 그분께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아버지의 품꾼 중 하나로 삼아 주소서, 하리라, 하고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매
아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이르되,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의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여기로 끌어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더라. " (누가복음 15장  17절-24절)

비록 이 말씀은 문맥상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온 아버지의 마음을 보고 제 마음의 태도를 깊이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난 한번이라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나온 분들에게 이런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을까요?

정말 그렇게 아끼고 불쌍히 여기며,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너무나  반갑게 여기며 껴안고 애정을 보이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같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왜 가지지  못했을까요?

그 완전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저같은 놈도 구원해주셨는데...
그렇게 어렵게 다시 교회에 나온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답시고 결국 멀찍이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네 것이니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니라. "(누가복음 15장 31-32절)

그 분들의 평소의  생활이 어떠한지, 교회에 잘 나오는지 아닌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어렵게 어렵게 예배에 나온 그 분들을 내가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가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나에게 있으니 이 사랑을 표현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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