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저같이 좀 나이가 들어서 예수님을 믿게된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하면서 의아하게 여기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가지 예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사과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제 스스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기전에 꽤 사교적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주변의 친구들, 혹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자주  술자리를 갖고 또 술자리 앞의 편한 분위기에 마음을 터놓고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던 기억이 많습니다.

지금은 성경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 술과 담배를 끊었지만 술이 만들어 내는 허심탄회?한 분위기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찌보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는 더없이 쉽고 좋은 기회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이가 다 그런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도 술자리를 싫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저 하나의 예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건 믿음을 가지고 생명의 땅에서 바라볼때는 그런 술자리가 말도 못할 진흙탕이라는게 보이지만
죽음의 땅에서 바라볼때  그것은  하나의 좋은 기회이자 쉬운 도구? 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술이 도구처럼 쓰이는 한 예가 사과할 일이 있을때입니다.
누군가에게 좀 서운하게 했다던지, 뭔가 사소한 것이지만 잘못을 했을때 마음에 남는 미안함을 편하게 전하고 적절?하게 사과하기위해  술자리는 자주 이용됩니다.
아마 이런일들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생겨서 한국의 술소비는 자꾸만 늘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양심에 남아있는 인간관계의 껄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반드시 어떤 행동을  합니다.
그에 반해 믿음을 가지 사람들은 우선 이런 마음속의 어려움을 제일 먼저 하나님앞에서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그  사람에게 가기보다 하나님앞에서 기도로 먼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후에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나름대로의 해결된(개운한?)?마음을 가지고는 거기서 그쳐버립니다.
당연히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해야할텐데  이렇게  사과까지 하는 모습은 의외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런걸까요?

하나님앞에 다 털어놓고 용서를 받았으니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라고 생각하는걸까요?
아니면
사람은 다 죄를 짓게 마련이니 저 사람도 그런 나를 이해할테지.. 하고 넘어가는 것일까요?

행동의 순서또한 과연 어떤게 맞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그 사람에게 사과한 다음에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게 맞는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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